오 세영 - 8월의 시, 8월, 사막7-신기루, 능소화
구기자
8월의 시
오 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솔나리
8월
오 세영
8월은 분별을
일깨워 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맞춤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온 한낮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절망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구나 홀로
태양을 안은 자는
상철 입는다
쓰린 아픔 속에서만 눈뜨는
성숙
노오랗게 타 버린 가슴을 안고
나무는 나무끼리
풀잎은 풀잎끼리
비로소 시력을 되찾는다
8월은
태양이 왜
황도(黃道)에만 머무는 것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달
사막 7 - 신기루
오 세영
머얼리 있어야 다가오는 것
머얼리 있어야 또렷해지는 것
머얼리 있어야 아름다운 것
가도가도 끝없는 열사의 지평에서
가슴에 뜨거운 태양을 안고
궁구하는 내 사랑
능소화
오 세영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다지도 아름답더냐.
체념의 슬픔보다 고통의 쾌락을 선택한
꽃뱀이여,
네게 있어 관능은
사랑의 덫이다.
네 부드러운 몸둥이
다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가슴으로,
칭칭 감아 올라
마침내
낼룽거리는 혀로
내 입술을 감쌀 때
아아, 숨막히는 죽음의 희열이여,
배신이란 왜 이다지도
징그럽게 아름답더냐.
지네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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