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오전 한 때 눈, 겨울 시 모음

opal* 2022. 1. 19. 16:57

 

겨울 초대장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아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 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 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아침 한 때 눈 펄얼펄~

잠시 내린 후 종일 흐림 

 

맛있는 저녁 먹고

달밤 체조 나섰다 

 

 

날씨가 워낙 추워 아침에 잠깐 내린 눈은 녹지 못하고

보도가 미끄러워 차라리 차도로 걸었다. 

단차선 일방통행이라 통행 차량도 많지 않지만 

눈길이 미끄러워 그런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백 분 걸리는 열 바퀴 다 돌도록 만난 차는 두 대가 고작.  

 

 

겨울 노래  
                                 마종기

눈이 오다 그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 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겨울 아침 풍경
                                    김종길

안개인지 서릿발인지
시야는 온통 우웃빛이다

먼 숲은
가지런이 세워놓은
팽이버섯, 아니면 콩나물

그 너머로 방울 토마토만한
아침 해가 솟는다

겨울 아침 풍경은
한 접시 신선한 샐러드
다만 초록빛 푸성귀만이 빠진 

 

동안거  
                                 고재종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겨울 일기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 번 열지 않고
반추 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울

 

 

白夜    
                                   기형도

눈이 그친다
인천집 흐린 유리창에 불이 꺼지고
낮은 지붕들 사이에 끼인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
가늠할 수 없는 넓이로 바람은
손쉽게 더러운 담벼락을 포장하고
싸락눈들은 비명을 지르며 튀어오른다
흠집투성이 흑백의 자막 속을
한 사내가 천천히 걷고 있다
무슨 농구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
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사내는
문닫힌 상회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빈 골목은 펼쳐진 담요처럼 쓸쓸한데
싸락눈 낮은 촉광 위로 길게 흔들리는
기침 소리 몇, 검게 얼어붙은 간판 밑을 지나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밤,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
꽝꽝 빛나는, 이 무서운 백야
밟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눈길을 만들며
군용 파카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겨울 나그네
                                            김재진

점점 더 눈이 퍼붓고 지워진 길 위로 나무들만 보입니다
나무가 입고 있는 저 순백의 옷은 나무가 읽어야 할 사상이 아닌지요
두꺼운 책장 넘겨 찾아내는 그런 사상 말입니다
그대가 앉아 있는 풍경 뒤에서 내가 노을이 된 것은 알 수 없는 그런 사상 때문은 아닙니다
그대라고 부르는 그 이름의 떨림이 좋아 그대를 그대라 부르고 싶을 뿐,
또 한 번의 사라잉 신열처럼 찾아와서 나를 문 두드릴 때 읽고 있던 책 내려놓으며
그대는 나무가 입고 있는 그 차가운 사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대, 단 한번 내가 가슴 속에 쌓아두고 싶은 맹세나 기도 같은 그대
그대가 퍼붓는 눈발이라면 나는 서 있는 나무 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바람이라면 나는 윙윙 울고 있는 전신주 일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눈 위에 세워놓은 이정표 따라 슬픔 쪽으로 좀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그대는 쏟아지는 하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