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 06(토) 오늘도 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소리 없이 내리는 비가 장마를 연상 시킨다.
내리는 비의 양이 우산 쓰기엔 적고 안쓰기엔 많다.
농번기가 시작되며 비가 내리니 풍성한 풍년을 예고하는 듯 하다.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인 입하(立夏),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뜻 이다.
‘입하 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라는 속담처럼 봄내 준비했던 못자리에 생명의 싹이 트고
모심기가 시작되어 만물이 푸르게 변하며 본격적인 영농활동의 분주함이 커지는 시기.
우리 조상님들은 이 시기에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으며 떨어진 원기를 회복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농번기의 시작은 많은 힘을 요구하는 시기 이다.
무더워지는 날씨에 너 나 없이 모두들 기력 잃지 않아야겠다.




점심 식사 후 우산 들고 나서며 빗물에 미끄러질까 산길 대신 포장도로 이용하니
까망, 노랑, 손잡이 망가진 흰 우산 셋이 나란히 길을 막는다.
한참을 걸어 숲으로 들어서니 한결 싱그러워진 모습.
노오란 송홧가루 뒤집어 썼던 나뭇잎이나 벤치, 데크길 모두
이틀 내린 비로 말끔히 청소되니 마음까지 시원하다.
싱그러운 내음에 코까지 벌름벌름, 옆에 누구 하나 얘기 나눌 상대가 있어도 좋을 분위기,
혼자 걸어도 결코 심심치 않은 호젓한, 내일도 걷고 싶어지는 길 이다.

데크길 난간에 작은 생명체 하나가 빗물에 반영되는 그림자를 만들며 지나간다.
배가 고파 빨리 나왔을까? 뭐가 바빠 이 차디찬 비를 맞으며...


며칠 전 부군을 떠나보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 걷다 말고 한동안 서서 이런 저런 얘기 나눴다.
20 여년을 요앙병원에서 지내다 떠나시는 분, "그래도 고통은 모르셨기에 다행으로 여기고, 나이도 있어 더 살아달리는 것도 욕될까 싶어 말도 못하고 지장보살님 따라 잘가시라 하며 떠나보내 드렸다" 고 한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나 언젠가는 다 떠나야 할 노인들인데...






바람 한 번 휘익 불면 송화 가루 날려 노오란 세상 만들 듯
숲 속엔 운무가 가득하고 멀리 들판엔 때맞취 논에 물이 가득가득 고였다.






비가 소강상태라 잠시 우산 접으니 소나무 곁에서도 쪽동백이 눈에 띈다.
몇송이 찍고 하늘 전망대 앞에 서니 코로나 한창 일 땐 서있던 비행기들이 다 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비가 덜 내리니 산책길 나선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평소 주말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그래도 비가 내려 한적한 상태다.
돌아오는 길 숲에선 까치며 직박구리 잡새 소리가 요란하다.
내리막 하산길엔 쪽동백 은은한 향기가 숲 속을 진동시키고, 날씨가 개이려는지 바람이 인다.
오늘도 쉬엄쉬엄 세 시간에 만족,
미끄러지는 흙길 피해 조금만 걷고 오겠다며 나선 것이 짙은 녹색에 매료되어 결코 짧지않은 산책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