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때 축하 화분으로 내 품에 안긴 지 십 오년.
부친을 닮아 워낙 꽃을 좋아해 란과 분재 등 종류도 많고, 열심히 정성껏 가꾸던 시절이니
남들은 시들어 간다며 버리는 화초를 줏어다 길러도 잘 자랐다.
오늘 핀 이 난도 실하게 잘 자라 구근이 내 주먹보다 크게 굵어지며 해마다 꽃을 잘 피웠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병상생활로 꽃들에게 신경을 쓸 수 없게 된 것이 8년 전.
자식같이 돌보던 화초들이 하루 아침에 주인과 이별하니 시들어 갔다.
화초들에게 미안하지만 내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들어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건강 회복을 위해 산으로 다니다 보니 살아 남은 몇 녀석 겨우 생명만 유지하고 있다.
그 많던 꽃들 다 없어지고 빈 화분만 잔뜩 쌓여 있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지
며늘이 예쁜 화분들을 골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지못해 살아 남은 몇 녀석에게 미안하여 가끔 물을 주니 다시 소생하며 꽃을 피웠다.
구근은 다섯 개 중 한 개만 남고 두 주먹 만큼의 크기가 계란 크기보다 작고 쭈굴쭈굴 해졌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또 피워냈다. 생명의 존귀함을 식물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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