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이 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그 여름의 끝
이 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길1
이 성복
그대 내 앞에 가고
나는 그대 뒤에 서고
그대와 나의 길은
통곡이었네
통곡이 너무 크면 입을 막고
그래도 너무 크면 귀를 막고
눈물이 우리 길을 지워버렸네
눈물이 우리 길을 삼켜버렸네
못다 간 우리 길은
멎어버린 통곡이었네.
그리 단단하지 못한 송곳으로
이 성복
비는 그리 단단하지 못한 송곳으로
땅을 쪼으려 내려오다 바닥에 닿기
전에 드러눕는다 자해 공갈단이다
비는 길바닥에 윤활유 들이부은 듯
아스팔트 검은빛을 더욱 검게 한다
하늘에서 내려올 땐 무명 통치마였던
비는 아스팔트 바닥 위를 번칠거리며
흐르다가 하늘을 둘러싸는 여러 다발
탯줄이 된다 아, 오늘은 늙은 하늘이
질퍽하게 생리하는 날 누군가 간밤에
우주의 알집을 건드린 거다 아니다,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알집 두터운 벽이
스스로 깨져 무너져 쏟아지는 것이다
비
이 성복
가라고 가라고 소리쳐 보냈더니
꺼이꺼이 울며 가더니
한밤중 당신은 창가에 와서 웁니다
창가 후박나무 잎새를 치고
포석을 치고
담벼락을 치고 울더니
창을 열면 창턱을 뛰어넘어
온 몸을 적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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