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금기 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 보아라.
멀리있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 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 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 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다만 하나의 빛갈로
신 달자
백지에 동그라미 그리면
그 안에
내 세상이 있다
조금 비뚤어진 원 안에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것은
하나의 빛깔로 움터오는
새싹인
아직 이름 없는 나의 세상
마흔 넘어도
두려움 없이 넓은 공간에 있을 수 없어
작은 동그라미 그리고 들어서면
아 드디어
여린 뿌리를 내리고
다만 하나의 빛깔로 떠오르는
나의 세상
백치 애인
신 달자
나에게는 백치애인이 있다
그 바보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별볼일 없이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다방에서 다방 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 눈물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또는 시장 속에서 행여 어떤 곳에서도
네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서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는
아무것도 볼수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며
한 마디도 하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다.
바보애인아.
1943 경남 거창 출생, 숙명며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64<거상>에서 시 '환상의 밤'이 당선.
1972 현대 문학에 시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어 등단. 문체 동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봉헌문자(奉獻文字)> 현대문학사 1973
시집 <겨울축제> 조광출판사 1976
시집 <고향의 물> 서문당 1982
시집 <아가(雅歌)> 행림출판사 1986
시집 <황홀한 슬픔의 나라> 융성출판사 1986
수필집 <당신은 영혼을 주셨습니다> 자유문학사 1986
수필집 <시간을 선물합니다> 자유문학사 1986
수필집 <그대곁에 잠들고 싶어라> 자유문학사 1986
시집 <다만 하나의 빛깔로> 문학사상사 1987
수필집 <아론 나의 아론> 우석 1987
시집 <아가 2> 문학사상사 1988
수필집 <지금은 신을 부를 때> 문학사상사 1988
수필집 <백치애인> 자유문학사 1988
수필집 <지금은 신을 부를 때> 문학사상사 1988
수필집 < 두 사람을 위한 하나의 사랑> 고려원 1988
시집 <백치슬픔> 자유문학사 1989
시집 <외로움을 돌로 치리라> 종로서적 1989
수필집 <물 위를 걷는 여자> 자유문학사 1989
수필집 <사랑이여, 나의 목숨이여> 오상 1989
수필집 <밉지 않은 너에게> 가람문학사 1989
수필집 <혼자 사랑하기> 문향사 1989
수필집 <네잎 클로버> 자유문학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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