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김 현태- 천왕봉에서,사랑을 다 주고 떠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을 한다는

opal* 2008. 1. 16. 22:04

 

 

천왕봉에서

                      김현태

외쳤어
미치도록 너를 불렀어

내 사랑이 이렇게
드높고 간절하다는 걸

지리산 귓구멍이
터지도록

뜨겁게 부르고 싶었던 거였어

 

 

사랑을 다 주고 떠나는 사람은 없다

                              김현태

그대가 열심히 사랑한다해도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두팔로 다 껴앉을 수 있을 만큼
단지 한 두명에 불과합니다

떠난 사람이 바로 그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떠난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은
그대의 절반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대에겐 아직도
너무 많은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했던 시절보다 이별한 후엔
떠난 그댈위해
천 배, 만 배 더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사랑한다해도
끝내, 사랑을 다 주고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

                           김현태

그대가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별도 그대와 함께
눈을 깜박입니다

그대가 별을 올려다보면
별도 그대를 내려다보고

고개를 떨궈버리면
별도 턱끝을 올려버립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늘 지켜봐 준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찾아내고
가다듬고
한결같이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아는가

                       김현태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말보다 헤어지자는 말을
더 많이 내뱉는다는 사실을
그대는 아는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하다는 말보다 죽겠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는 걸
그대는 아는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시간보다
그리움의 시간이 더 많다는 걸
그대는 정녕, 아는가

 

 

산정호수

                           김현태

누구도 깊이를 알 수 없네
양발을 벗은 사람에게는 발목까지만 차오르고
윗통을 벗은 사람에게는 가슴까지 차오른다네
그대가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모든 걸 버려야 하네
누군가의 깊이를 재기 위해선
그 깊이보다
더 깊게 사랑해야 한다네

 

 

 

원광대 법학과 졸업
1997 월간 <소년문학>에서 신인문학상 수상,
2000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행복한 선인장」당선

수필집 <마음으로 사람을 보아라>
어른을 위한 동화<이솝이 죽기 전에 빠뜨리고 간 이야기>
시집<마음도둑 사랑도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