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고 싶은 곳
최 문자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 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 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달맞이 꽃을 먹다니
최 문자
감마리놀렌산이 혈행에 좋다고
그렇다고
그 꽃을 으깨다니
그 꽃 종자를 부수고 때리고 찢어서
캡슐 안에 처넣다니
그 피범벅 꽃을 먹고
혈관의 피가 잘 돌아가다니
욕심껏 부풀린 콜레스테롤이 그 꽃에 놀아나다니
그렇다고 나까지
하루 두 번 두 알씩 그걸 삼키다니
머지않아 꽃향기로 가득 찰 혈관
그렇다고
하필 그 환한 꽃을 죽이다니
밤마다 달을 바라보던 그 꽃을
꽃 심장에 가득 찼을 달빛을
그 달빛으로 기름을 짜다니
노오란 꽃에 앉았던 나비의 기억까지
모두 모두 으깨다니
부서진 달빛, 꽃잎, 나비,
두 알씩 삼키고 내 피가 평안해지다니
생수 한 컵으로 넘긴 감마리놀렌산 두 알
혈관에 달맞이꽃 몇 송이 둥둥 떠다닌다
슬픔에 오르다
최 문자
사랑만한
슬픈 山이 있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슬픔이 높아가는 산이 있었다.
비린내 품은 본능의 숲을 지나
굵은 눈물방울로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
찌를 때마다 더욱 엉겨붙는 가시덤불을 헤치면
천근으로 내려앉는 절망의 바위.
숨막힐 듯한 무심한 頂上의 얼굴은
무방향으로 돌아앉은 절망의 높이였다.
슬픔에 놀라지 않으려고
융기된 슬픔의 산자락을
딛고 또 딛으며
헛발질친 사랑을 등뒤에 두고
나는 오른다.
줄어들지 않는 슬픔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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