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철쭉꽃- 안 도현, 정 영자, 정 양의, 고 정희, 우 미자, 김 광원.

opal* 2009. 4. 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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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

 

                             안 도현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철쭉꽃이 피었습니다

열 일곱 살 숨가쁜 첫 사랑을 놓치고 주저 앉아서

저 혼자 징징 울다 지쳐 잠든 밤도 아닌데

회초리로도 다스리지 못하고

눈물로도 못 고치는 병이 깊어서

지리산 세석 평전

철쭉꽃이 먼저 점령 했습니다

어서 오라고

함께 이 거친 산을 넘자고

그대, 눈 속에 푹푹 빠지던 허벅지 높이 만큼

그대, 조국에 입 맞추던 입술의 뜨거움 만큼

 

 

철쭉꽃 무리로 피는 그리움

 

                                                    정 영자

 

막아야 되네,

 

지리산 운봉자락 아래

잎만 키 높이로 내려다보는 철쭉 능선을 너머

바람 속에 오르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온 길,

그래도 할 말은 남아

꽃으로 피고 있나,

 

천년 만년을 기다려

꽃으로 피고

보고 싶은 마음은 꽃 봉오리에 담아

운봉넘어 바래봉까지

아직도

그리움 남아 꽃이 필 것이라는 데,

 

철쭉꽃 능선 오솔길에

사랑 하나

실바람 꽃타래로 지나고 있다.

 

함께 떠났지만

숲길에 잃어버린

사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려

꽃무리로 피는 그리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억만년을 기다리는 것이네.

 

 

철쭉 꽃밭

 

                                             정 양의

 

스무 해 넘도록 이 길을 다녔습니다

바람도 가라앉은 적막한 녹두광장 옆

밤 깊은 흐드러진 철쭉꽃밭이

오늘은 내 무딘 눈길을 빼앗습니다

열 아흐레 이지러진 달빛이

덩달아 발길을 멈춥니다

 

한사코 눈길을 사로잡는

꽃잎과 달빛의 이 찰떡궁합,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지만

사람들은 해마다 늙어 간다던

가물거리는 唐詩 한 구절이

오늘 밤엔 비늘처럼 서럽습니다

 

스무 해 넘도록 이곳에서 수없이

떠나간 얼굴들이

떠나가고 떠나가고 남은 세월이

볼수록 눈부시게 쓰라리게 글썽거리고

서럽거나 그립거나 쓸쓸하거나 말거나

누가 보거나 말거나 달빛은 저렇게

막무가내로 꽃잎마다 몸을 섞고 있군요

 

보고 싶은 뺨 비비며 묵은 그리움 섞을

그런 꽃밭이 어디 여기 뿐이냐고

밤이 깊었다고 어서 가자고

구름 비낀 달빛은 자꾸만

속보이는 딴지를 걸어 옵니다

                                                                 (*녹두 광장- 우석대 잔디밭)

 

 

철쭉祭

 

                                  고 정희

 

산마을 사람들아

고향땅 천리 밖에 있어도

철쭉 핀 노을강 앙금이 보인다

아름답게 갈라진 노을강 허리

하늘마저 삼켜버린 노을강 강바닥

지리산 철쭉밭에 꽃비로 내리고

즈믄밤 내린 꽃비 꽃불로 타오르고

이제는 적실 수 없는 강이여

참담한 추억에 불붙는 산이여

아무도 묻지 않는 꽃의 행방

아무도 찾지않는 물의 행방

그 한쪽을 간절하게 밝히며

하나님깨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아라

영원한 천벌의 꽃불을 보아라

영원한 천벌의 꽃불을 보아라

어느 어둠 저 불 끄고 지나랴

어느 어둠 저 불 가릴 수 있으랴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강

완벽하게 쓰러진 성벽에 앉아

하프를 뜯으며 타오르는 사람들아

타오르다 타오르다 숯이 되는 사람들아

고향땅 천리 밖에 두 눈 감아도

이 깊고 공고한 칠흑의 계곡에

그대들 꽃불은 환히 와 닿는구나

그대들 가락은 휘어지며 와 적시는구나

세상은 추위로 깊이 잠든다 해도

타오르지 않는 것은 불이 아니기

적시지 않는 것은 강이 아니기

스스로 스스로 江岸을 물들이는

지리산 철쭉들아,

스스로 스스로 숯이 되는 사람들아

불이 그리운 자는 또한 기리고 있으리

이 세상 적시는 물과 불의 축제

火夫의 야산에서 타오르는 축제

 

 

바래봉 철쭉

 

                          우 미자

 

사월의 사진 속에서

오래 나를 부르던 꽃

운봉, 구름이 마을로 들어가

바래봉을 오른다

산신령이 새벽 산이슬로

마악 씻어낸

푸른 잎사귀들

수런수런 수런대고

열 아홉, 붉게 타던

진달래 가슴

여기, 활화산 되어

봉올봉올봉올

타오르고 있구나.

눈물의 열 아홉살

한 생애가 다 실려와

한꺼번에 여기 폭발하고 있구나.

 

 

바래봉 철쭉

 

                                        김 광원

 

나는 철쭉

너도 철쭉

나의 사랑도 철쭉

너의 사랑도 철쭉

나의 친구의 사랑도 철쭉

너의 사랑의 친구의 사랑도 철쭉

나의 친구의 사랑의 친구의 사랑도 철쭉

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

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

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철쭉

눈부신 하늘 밑 붉은 구름이 되어

일제히 터지는 하나의 함성!

너와 나 사이에는 오로지

철쭉뿐, 철쭉과 철쭉 사이에

곷이 피네, 피어나네.

자잘한 저 아랫마을

사람들아, 여기좀 보아!

철쭉 터지는

여기 이

純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