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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 첫날, 수리성

opal* 2025. 3. 20. 22:32


'250319(수) 오키나와  여행 첫날, 수리성

전엔 로밍하지 않아도 여행지 호텔에서 와이파이가 작동되었는데 이번엔 뭐가 잘못 된건지... 제 날짜에 올리지 못했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비행기로 출발, 오키나와 나항 공항 도착하여 그대로 수리성으로 이동, 수리성 둘러보고 유럽풍 마을 우미카지 테라스로, 다시 후쿠슈엔(중국식 정원) 갔다가 휴일이라 국제거리로 이동, 가이드가 미쳐 몰라 미안하다며 소금 아이스크림 사주어 먹고 국제시장 둘러보고, 저녁식사 후 전통무용 관람. 호텔로 들어가 잠시 간단히 차 나누며 수다 떨다 휴식, 긴 하루를 보냈다. 
회원 7명 중 P형님 한 분 건강상 이유료 불참하셨지만, 팔순 되도록 해외 여행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날 이다. 

일출 모습을 인천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 공항 도착.

슈레이몬(守礼門, 수례문)
성의 정문이다. 일본 엔 2000엔권 지폐의 도안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전투에 휘말려 전소되었고, 1958년 복원되었다. 현판에 적힌 글씨는 수례지방(守禮之邦), 해석하면 "(류큐는) 예절(禮)을 중시하는 나라다"라는 의미다.

짧은 성곽과 문만 세계 문화유산에 속한다.

수리성 -  2019년 10월 화재 전소 

일본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류큐 왕국의 왕궁이자 거성(구스쿠) 이다. 
참고로 슈리는 나하와 별개의 지역으로서 류큐 왕국의 수도였는데 지금은 나하시의 일부로 합병 되었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유적지이다. 본토 일본이나 대한민국, 중국과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볼 수 있다. 

13세기 슌텐 왕조의 왕인 슌바준키가 건설했다고 하나, 슌텐 왕조 자체가 실제 역사가 아닌 전설이라는 주장도 있어 분명치 않다. 오키나와판 삼국시대인 삼산시대에는 중산 왕조의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쇼하시 왕이 우라소에를 함락시키고 중산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 수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한중일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류큐 왕국은 번영했지만 1453년 왕위다툼인 시로, 후리의 난(志魯,布里の乱) 당시 이 성이 불타 없어진 적이 있다.
쇼네이 왕 치세인 1609년, 사츠마 번의 침략으로 슈리성에서도 전투가 일어났지만 결국 패하여 류큐 왕국은 사츠마의 속국이 되었다. 성에는 지금도 중국 사신과 일본 사신을 알현하는 시설이 각각 따로 있다.
이후 류큐 처분과 폐번치현을 거쳐 쇼타이 왕이 도쿄로 압송되어 왕궁 역할을 상실하였다. 
이후로는 일본군 주둔지로 쓰이다가 신사 건립을 위해 철거될 뻔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일제에 의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육군 제32군 총사령부가 슈리성 지하벙커에 자리잡은 관계로 격렬한 전투에 휘말렸다.

1945년 5월 25~27일간 벌어진 3일간의 격전에서 건물은 완파되고 수많은 류큐 왕국의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성은1992년부터 차례로 복원됐다.
2018년에는 세이덴 외벽 보수작업으로 인해 당분간 볼 수는 없으나 건물 내부로는 들어갈 수 있다.
1958년 슈레이문이 복원되고 1989년 기나긴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19년 1월에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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