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주왕산 바위들

opal* 2007. 11. 1. 15:03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3 폭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2 폭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1 폭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鶴巢臺(학소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절벽 위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옛날 어느 사냥꾼에게 백학이 잡혀,  짝 잃은 청학이 혼자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학은 간데 없고 보금자리 터만 절벽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한다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루봉.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위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루봉은 옆에서 보면 동물의 얼굴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汲水臺(급수대).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36대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 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인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 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上大等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김 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

당시 산 위에는 물이 없어 계곡에서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紫霞城(자하성).   주왕이 신라 군사를 막기위해 大典寺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막은 돌담으로

  길이가 약 12km(30일)에 달하였다 한다. 이 성은 周王窟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 할 수 있는 요새로

돌문과 창고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의 形體는 거의 사라졌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331

 

'pho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출산(月出山) 바위  (0) 2007.11.28
을왕리 연가  (0) 2007.11.05
석모도 추억  (0) 2007.10.30
설악 晩秋  (0) 2007.10.24
천불동 계곡 단풍  (0) 2007.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