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어령- 날게 하소서,

opal* 2009. 1. 26. 02:58

 

벼랑 끝 입니다, 날게 하소서

 

                                               이 어령

 

벼랑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우리에게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 입니다.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무서운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은 적 없었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이 낭떠러지에서 그대로 떨어지라 하십니까.

 

벼랑이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 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을 3,000억 달러을 해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쏠려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철 없는 자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千人斷崖의 헛발을 내딛는 추락입니다.

 

덕담이 아니라 날개를 주십시오.

비상非常시에는 비상飛翔을 해야 합니다.

독기서린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든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바닥에 처박힌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주소서.

 

날게 하소서, 뒤쳐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천 년 학의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갈등과 무질서로 더 이상 이 사회가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을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아닙니다, 아주 작은 날개라도 좋습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지금 외치는 이들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끝에서 날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