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雪 注意報
최 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어디에부리부리한솔개라도도사리고있다는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텔레비전
최 승호
하늘이라는 無限화면에는
구름의 드라마,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수줍은지
모습 드러내지 않네
지난 여름의 주인공은
태풍 루사가 아니었을까
루사는 비석과 무덤들을 무너뜨렸고
오랜만에 뼈들을 진흙더미에서 해방되어
강물로 뛰어들었네
기를 쓰며 울어대던 말매미들이
모두 入寂한 가을
붉은 단풍이 고산지대로부터 내려오고
나무들은 벌거벗을 준비를 하네
그들은 어느 산등성이를 걷고 있을까
툭 트인 암자 툇마루에서 쉬고 있을까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산 좋아하는 이들을 마지못해 따라나서도
계곡에서 그냥 혼자 어슬렁거리고 싶네
누가 참 염치도 없이 내다버렸네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무슨 면목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처박혀 있네
쉬임없이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
* 2003 미당 문학상 수상작
北 魚
최 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세속 도시의 즐거움 2
최 승호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곡하던 여인은 늦은 밤 손익을
계산해 본다.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고
(큰 도적에게 큰 슬픔 있으리라)
누워 있는 알거지의 빈 손,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은
냉동실에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데
흑싸리를 던질지 홍싸리 껍질을 던질지
동전만한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
그들은 죽음의 밤에도 킬킬대며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다.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
쥐들이 이빨을 가는 밤에
쭉정이 되는 추억의 이삭들과 침묵 속에서
냄새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기웃거리는
죽음의 왕.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홑거적 덮은 알몸의 주검이
혀에 성에 끼는 추위 속에 누워 있는 밤,
염장이가 저승의 옷을 들고 오고
이제 누구에게 죽음 뒤의 일을 물을 것인지
그의 입에 귀를 갖다댄다
죽은 몸뚱이가 내뿜는다 해도
서늘한
허(虛)
1954 강원 춘천 출생
춘천교대 졸업
1977 <<현대시학>>에 시 <비발디>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82 제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1985 제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1990 아산 문학상 수상
2003 <텔레비전>으로 제3회 미당 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대설주의보> 민음사 1983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1985
시집 <진흙소를 타고> 민음사 1987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 세계사 1990
시집 <회저의 밤> 세계사 1993
시집 <반딧불 보호구역> 세계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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