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동화) 김 병규 - 넌, 뭘 잘하니?

opal* 2009. 5. 25. 08:55

 

넌, 뭘 잘하니?

 

                                          김 병규

 

학교에서 돌아온 종지는 마치 제 자랑인양 종알거렸습니다.

"엄마, 우리 반에 빨간 치마 입은 여자아이가 있는데, 노래를 되게 잘해." 그런 종지에게 엄가가 물었습니다.

얼마나 잘 하는데?"

"그 아이가 노래를 부르면, 손뼉을 안치는 아이가 없어."

"정말 잘하는 모양이구나." 이렇게 말하며 엄마는 힘업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마침 회사에서 돌아온 고모가 종지와 엄마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종지야 ,무슨 일이니?"

"아 이제 생각났어, 이름이 은희야,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의..., "

종지는 엄마와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고나서, 고모를 돌아보았습니다.

"어제는 책 잘 읽는 친구가 있다고 했잖아?"

'응, 있어, 걔는 안 배운 곳도 다 읽어."

고모는 뭐라고 말 하려다가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다가는 쥐어박는지 쓰다듬는지 모르게,

손으로 종지 머리를 건드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지를 똑바로 보지 못햇습니다.

종지는 왜 엄마가 그런 얼굴빛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은희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그 아이가 얼마나 책을 잘 읽는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여길 뿐이었지요

그날, 모처럼 아빠가 일찍 퇴근했습니다. 종지는 아빠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기를 기다렸습니다.

뒤에서 두 팔로 아빠의 목을 감으며 매달렸습니다.

"아빠, 내 친구는 숫자를 다 알아 . 벌써 덧셈도 잘해."

"너도 숫자 썼어?"

아니, 다른 애들이 숫자 공부할 때 난 그림을 그렸어."

"뭐, 그림을 ?"

"응, 선생님께서 그래도 좋다고 했어, 그림 그리는게 재미 있으면.. "

아빠는 가늘게 한숨을 내 쉬셨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빠의 등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종지는 슬그머니 팔을 풀고 미끄러지듯 등에서 내려왔습니다.

 

종지가 학교에입학하는  날에는 온 가족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날, 공부가 어떤 맛인지를 알려주는 자니가 열렸습니다.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먹여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칭찬을 받을 수 있답니다.

엄마는 케이크에 촛불을 켜며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책 속에서 빵처럼 넉넉한 재물과 앞날을 밝힐 빛을 얻을 수 있다나요.

고모는 맛있는 포도 잼을 한 통 사왔습니다. 그 잼을 과자에 발라서 주며

'공부는 바로 인생에 잼을 바르는 거야' 라고 했습니다. 오빠는 사탕을 주었고요.

그런데 할머니는 당근을 깎아 주었습니다. 꼭꼭 씹어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하지만 종지는 아직 공부의 맛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입학한 지 두 달 세 달이 지날수록 가족을은 은근히 걱정스런 눈으로 종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날도 종지가 오빠한테 자랑했습니다. 물론 제 자랑이 아니고 남의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오빠, 내 짝꿍은 받아쓰기 엄청 잘해, 오늘 100점 받았어."

"넌 몇 점이야?"

종지는 가방에서 받아쓰기 시험지를 꺼내 오빠한테 내밀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본 오빠는 주먹으로 종지 머리를 콩 때렸습니다. 종지는 두 손으로 얼른 머리를 감싸며 혀를 쏙 내밀었습니다.

그 시험지에는 열 문제가 나와 있는데, 동그라미가 그려진게 둘 뿐이었습니다.

그 시험지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속상해 했습니다. 엄마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던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 시험지를 보고 선생님께서 뭐라 하셨어?"

"그냥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

"다른 애들은?"

웃었지."

사과를 깎던 엄마는 그만 칼이 비끗하는 바람에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아빠는 아까부터 과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요.

"100점 받은 아이들이 더 있지?" 고모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응, 우리반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참 많아."

종지는 제 일인 양 마냥 신이 나서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그만 화가 난 고모가 욱박지르듯 물었습니다.

"도대체 넘 뭘 잘하니?""나? 몰...라....." 그때 할머니가 슬그머니 일어났습니다.

종지의 손을 잡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느새 주위는 캄캄했습니다. 

 하늘에는 별들이 푸뜩푸끅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종지는 할머니가 끄는 대로 공원으로 따라갓습니다.

풀밭에 앉앗습니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물씬풍겼습니다. 할머니는 종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어느새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일찍 뜨는 별도 있고, 늦게 뜨는 별도 있지, 공부도 마찬가지란다. 일찍 깨치는 사람도있고,

좀 늦는 사람도 있는 법이야, 종지야 걱정할 것 없어."

"할머니 나 걱정 안 해."

"그래 그래 우리 종지 장하다. 저 별들을 봐라. 큰 별도 있고 작은 별도 있지.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제깜냥대로 반짝이면 된단다."

"난 작은 별이 더 좋아." 할머니는 그런 종지를 꼭 안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넌 정말 특별한 눈을 가졌어,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볼 줄 아는 게 어디 예사 눈이니!"

"지금 노래했어, 할머니? 난 어려운 말은 못 알아 들어."

"오냐 괜찮다 못알아 들어도... "

 

며칠 뒤, 토요일이었어요. 아빠도 고모도 일찍 집에 왔습니다.

오빠가 온 지도 한참 되었는데 종지만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보두들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종지가 돌아 왔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지 실내화 주머니를 빙빙 돌리고, 펄쩍 펄쩍 뛰며 왔습니다.

온가족이 다 모여있는 것을 보고 마침 잘됐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 오빠!" 제 눈에 띄는차례대로 가족을 불렀습니다.

모두들 또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서,  오빠가 핀찬 투로 물었습니다.

"왜? 또 누가 뭘 잘했니?"

"응! 오늘은 내가 잘했어, 내가 잘하는 걸 알았어."

"뭔데?" 모두 벌떡 일어서며 똑같이 물었습니다.

"사랑을 잘 한대, 나는... 선행님께서 그러셨어."

 

교실에 조그만 화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 바짝 마른 흙에서 새 잎이 좁고 길게 자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종지는 아침마다 양지쪽으로 화분을 옮겨 햇볕을 쬐게 했습니다.

시들지 않게 가끔 물도 주었습니다. 

그 잎사귀 사이에서 꽃줄기가 나오더니, 아 글쎄, 보랏빛 꽃을 피운 것어었습니다.

"각시붓꽃이구나!" 선생님은 그 꽃을 보고 감탄 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몰려들었습니다.

코를 발름거리며 향기를 밭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문득 선생님의 눈길이 그런 아이들 뒤쪽에서 혼자 미소 짓고 있는 종지에게 머물렀습니다.

선생님은 종지를 꽃 앞에 세워놓고 100점 받은 아이보다 노래 잘하는 아이보다 더 큰 칭찬을 해주었습나다.

그러면서 종지한테 '사랑하는 마음이 많다.'고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입때것 각시붓꽃을  돌보는 종지를 눈여겨 보아 온 선생님이었거든요.

 

가만히 듣고 있던 할머니가 종지를 덥석 안았습니다.

"사랑 잘하는게 공부 잘하는 것보다 낫지, 암, 낫고말고. 사랑하지 않고서야 남이 잘하는 걸 볼 수 없지."

아빠가 할머니로부터 종지를 빼앗듯이 받아 번쩍 둘어 올렸습니다.

"우리 종지, 정말 장하구나!"

종지를 바라보는 다른 가족들의 눈은 새로움으로 반짝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