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021년 立春, 설야(雪夜)

opal* 2021. 2. 3. 23:51

남쪽에서 봄꽃 소식 전해온지 불과 사 나흘 전,

 

올해 입춘은 오늘인 2월3일,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새 봄의 상서로움을 맞이하는 시 몇 글자
춘번자(春幡子)나 춘첩자(春帖子) 써 붙일 그럴듯한 대문이나 기둥도 변해버린지 오래

 

입춘 당일 立春 時에 맞춰 붙여야 효험 있다고 하는데

이번 立春 時는 오후 11시59분,

지금 이 시각 밖엔 소리 없이 눈이 쌓이고 있다.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回)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김광균(황해도 개성/1913~1993), 1938년

 

눈 오는 밤의 시

                                                김 광균


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
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우에 눈이 나린다

 

눈은 정다운 옛이야기
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
좁은 길에 흩어져
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 - 게 빛나고

 

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
그 우를 지나간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
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
공원의 동상 우에

동무의 하숙 지붕 우에

 

카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우에
밤새 쌓인다 
                                     

김광균(金光均, 1914~1993),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대표작 - 가신 누님, 야경차(夜警車), 시인부락, 자오선, 와사등(瓦斯燈) 등

1939년에 첫 시집 '와사등(瓦斯燈)'을 펴낸 김광균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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