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새들은 생각과 실현의 간격이 짧다 / 김용택

opal* 2021. 12. 29. 15:12

박새

 


새들은 생각과 실현의 간격이 짧다 

                                              김용택 

박새가 날아와 
돌담에 붙어 있다가 
금방 난다 

 

딱새가 날아와 
죽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가 
금방 난다 

 

새들은 
생각과 실현의 간격이 짧다

왜가리만 몇 시간을 제 자리에서 외발로 서서 
먹이를 노린다. 

 

 

인내의 긴장이 길어도 
겨울 강에서는 
그 결과가 허망할 때가 많다. 

자본의 가치가 가장 앞에 있는 세상에서 
긴 사색과 회의가 
대부분의 일을 그르친다. 

새를 따라가다보면 하늘이 멀리 열린다. 
바람은 불고 
햇살은 모자라거나 남지 않는 
정확한 그림자를 준다. 

산은 가만히 있고 
강물은 가져간 것들을 돌려주지 않는다. 
강물은 돌아올 길이 없어 
무정하다. 

 

 

어느 때부터였는지 나는 
단순해져갔다. 
단순은 단박에 되지 않는다. 
공간이 시간을 버린다. 

어느 지점에서인지 
짧은 숨을 내뱉고 
다시 길게 들이 마셨다. 

단숨과 한숨은 
안심이 되었다. 

때로 나무들이 낯설다 
잘 왔다고 바위들이 
부드러운 눈을 준다. 

 


강길을 걷다가 산으로 들 때가 있다. 
강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간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간다. 

 

숲이다. 
나무가 좋다. 

 

숲보다 나무가 좋다. 
나는 나무이고 싶다. 

 

숲은 전체를 강요한다. 
어깨 걸지 말라 어린 나무들아 
숲속에서 나오다 뒤를 돌아본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中 
                               "새들은 생각과 실현의 간격이 짧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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