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이 기철
제 이름 한 번 부르면 쩌렁하고 대답하는 산골짜기에는
제 이름 한 번 부르면 이쁜 얼굴로 고개 드는 산냉이꽃도 산다
저렇게 깊은 산에 메아리 혼자 산다면, 아마
메아리는 심심해서 산을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늙지 않고 쩌렁쩌렁 산을 호령하는 메아리는
싸리꽃 나리꽃 산냉이꽃들의 박수소리에
신명나게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5
이 기철
내 地上에서 70년은 아름다웠다고
어느 날 내 일기장은 쓰리
푸른 시금치 잎을 먹고
안개 걷힌 들길을 걸어간 일 황홀했다고
아직 먼지가 되지 않은 참회록은 쓰리
황폐한 길과 건물들 사이에서
슬픔으로 반추하던 고뇌들이 날아가 수정(水晶)이 되었다고
고통의 술잔에 입술을 대며 바라본 하늘은 푸르렀다고
내 한 사람의 이름 앞으로 보낸 편지는 말하리
부르기만 해도 입 안에 초록빛 물이 고이는 풀꽃의 이름과
가끔 놀빛이 차양처럼 눈 앞에 걸리던
걸어온 만리길은 약속처럼 설레었다고
내 흙 묻은 구두는 외치리
그러나 지상의 노래들의 절반인 고통이여
기록 없는 마음의 病歷이여
네가 괴로움에서 즐거움까지 닿는 데는
또 몇 번의 가을이 바뀌어야 하나
<1993년 제1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1943 경남 출생
영남대 졸업
1972 <<현대문학>>에 <5월에 들른 고향> 등이 추천되어 등단
<<자유시>> 동인
1993 제1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작품명 :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낱말 추적> 중외출판사 1974
시집 <이상화전집(李相和全集)> [편] 문장사 1982
시집 <청산행(靑山行)> 민음사 1982
시집 <전쟁과 평화> 문학과지성사 1985
시집 <우수의 이불을 덮고> 민음사 1988
시집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문학과비평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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