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왕산에 가보셨나요
고 두현
용평 발왕산 꼭대기
부챗살 같은 숲 굽어보며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더니
전망대 이층 식당 벽을
여기 누구 왔다 간다, 하고
빼곡이 메운 이름들 중에
통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
<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하, 녀석 어떻게 눈치챘을까.
높은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다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늦게 온 소포
고 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슬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산에 가야 맛을 알지
고 두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육백팔십 미터
보리암 정상 금산산장
아침 먹다가
「산중에 웬 볼락어 고기?」
「아, 까짓거. 릴 낚시로 한 코만
잡아댕기면 금방 올라오지요.」
해수관음보살 닮은
산지기 총각 농담 한 코에
산 바다가 마주보며
하, 하, 하,
웃습니다.
그러고 보니
황태국물도 대관령 넘어야
노랗게 제 맛 든다고
높은 곳에 올라 본 고기들끼리는
그 맛 아는가 봅니다.
볼락어 저도
볼록볼록 따라 웃습니다.
1963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시집 '늦게 온 소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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