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 겠다.
김장호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한 켤레와 피켈과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허리에 깔리는 노을, 또는 동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싫다고는 말 못할 그런 목소리로
저 바람 소리가 나를 부른다.
흰 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 오히려 따스한 천막 한 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한 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떠돌이의 신세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산사나이의 신나는 이야기와 그리고
기나긴 눈 벼랑길이 다 하고 난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있으면 그만이다.
바람이 인다.
새해 아침 먼동이 트면서 저기 장미 빛 노을이 손짓한다.
배낭을 챙기자.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북한산(北漢山)
김 장호
어버이를 여의고 나는
내게 지붕이 없어졌다고 느꼈다.
분가를 하고서는 더구나
내가 외톨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며 돌아보며
됨됨이를 탓하면서
골목마다 책갈피마다
아, 신열로 달아오르던 나날,
문득 머리 위에 덮여오는
지붕,
눈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동짓달 산그늘을
시나브로 흔들리는 우듬지의 바람으로
녹슨 숲을 헤집고 손톱 밑을 헤집고,
하냥 기어오른 마루턱
어쩌자고 벼랑가에 잠드는
나를 만났다.
도시 어디를 헤매다가 이제 오느냐고
그제사 눈을 비비는 나를 끌어안고
소리치는 산이 있었다.
김 장호
章湖(1929~1999) 시인은 본명이 김장호, 독특하고 고집스러운 삶을 살았다.
1999년 4월 18일, 지병으로 작고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학생들을 엄하게 가르치기로 소문난 대학교수였으며,
아홉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취미로 오르기 시작한 산이 산을 향한 열병(mountain fever)으로 번졌다.
1977 에베리스트 원정 훈련대장을 맡아 설악산 눈밭에서 고상돈 등과 함께 뒹군 그였다.
스스로 바위를 타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몸 날리는 후배 대원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뿌리기도 했다.
돌아와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곤 했다.
저저로는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1978), 「속,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1982),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1989),「한국명산기」(1993), 「우리 산이 좋다」(200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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