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도 종환 - 山을 오르며.

opal* 2007. 5. 5. 15:53

 

 

 

 

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 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겹손하게 받아 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 시집 '슬픔의 뿌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