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 화재로 소실.
(2008.2.10. 저녁 8시 40분경 발화)
600여년 사적이
다섯 시간만에 사라지다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 없다.
우울한 하루.
서울 성곽(城郭)의 정문으로
문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며
태조(太祖) 7년(1398)에 창건된 후
세종(世宗) 29년(1447) 크게 개축(改築)되었다.
이 문은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물(木造建物)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석축(石築)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그 위에 정면(正面) 5칸, 측면(側面) 2칸의
중층(重層) 문루(門樓)를 세웠으며,
지붕(屋蓋)은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는 다포식(多包式)으로
힘이 있고 간결한 살미첨차가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수법(手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문은 외관(外觀)이 장중(莊重)하고
내부구조(內部構造)가 견실(堅實)하여
수도(首都)의 성문(城門)으로 당당한 면모(面貌)를 지닌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대표적(代表的) 건축(建築)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불타기 전날 (2008.2.9. 14:30 전후 촬영)
Leica로 찍은 다른 님의 사진 빌려 왔습니다.
불타기 전날 (2008.2.9. 14:30 전후 촬영)
불타기 전날 (2008.2.9. 14:30 전후 촬영)
화재 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