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가 들어 있는 유월이라 집 나서는 시간이 환하다. 안개가 뽀얀 걸 보니 무척 덥겠다.
강원도 오지의 나물 산행, 9시 반 들머리 도착. 어짜피 나물은 잘 모르니 원창고개 넘어 1진 따라 하차.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원창 댐까지 올라가니 도로가 끝, 되돌아 내려와 좌측으로 오르니 가파르다.
지도에 원창 저수지 옆으로 들머리가 되어 있어 가 보니 길이 없다. back하여 左측으로 임도 따라 오른다.
다리를 건너 작은 계곡을 따라 강원대학교 학술림으로.
임도만 따르다 보니 한 쪽은 절벽 상태, 산 기슭으로 난 임도만 걷게 된다.
건너편 산 중턱으로 길이 보인다. 걷다보니 나중에 걷게 되는 길이다.
몇 번을 돌고 돌아 가 보니 저 길이 가야할 길임을 알게 된다.
보기엔 평지로 편안한 이 길, 산 중턱에 있어 좌측으론 낭떠러지, 우측으로 높은 봉이다.
골짜기 건너편으로 걸어 지나온 길이 보인다.
안쪽으로 휘는가 하면
바깥쪽으로 돈다.
산 중턱으로 난 임도를 따라 안쪽으로 돌고, 바깥쪽으로 돌며 고도를 높여 간다.
이제나 오르려나 저제나 오르려나, 가보면 길이 없고 또 가봐도 길은 오로지 임도 하나.
속고 속아가며, 뙤약볕 아래 셀 수 없을 정도로 산 모퉁이를 돌고 돈다.
산행 시작(09:10) 두 시간 반 걸으니 임도가 이곳에서 끝이다(11:40). 산중턱으로 걸었지만 고도가 제법 높다.
말이 두시간 반이지 정말 지루한 길, 지루한 시간이다. 능선을 걷는 것과는 맛이 아주 다르다.
강원도 오지, 군사도로만 걷는 이런 산행은 처음이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되려나보다 하고 뒤 따라 오르며 걸어온 임도를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앞 서 오르던 선두 뒤돌아 내려오며 "길이 없다" 한다.
임도로 내려 섰다가 앞에 보이는 봉으로 올라선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니 길이 없어, 무조건 고도를 높이며 오른다.
1진으로 차에서 먼저 내린 사람이 10명도 안된다. 죄다 뿔뿔히 흩어져 길을 찾다보니 한 명이 안 보인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핑계김에 잠시 쉬며 간식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일어서서 능선 찾아 내려서니 없어졌던 일행 나타난다. 일부러 봉우리 위까지 다녀 왔단다. 길이 없으니 모여 가자며 뭉친다.
방향을 계산하며 능선을 내려서니 나무 사이로 녹두봉이 보이는데 정상에 군사 시설물 이 보인다.
길이 없으니 나무 사이를 헤쳐 내려 딛는다.
더운 계절이라 나무는 무성하고, 길이 없어도 겁없이 웃으며 다닌다.
11시 40분에 임도와 헤어져 봉우리로 올라서며 헤메다 내려오니 오후 1시가 되었다.
다시 임도를 만나 녹두봉 방향으로 걸으니 작은 계곡 물이 흐른다.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물가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 식사.
일어서 가려는 참인데 작은 짐차 한 대가 온다. 잠깐 세워 녹두봉 가는 길을 물으니
이쪽은 방향이 아니라며 절대로 갈 수 없으니 뒤 쪽으로 가란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분명히 이쪽인데...
뒤쪽으로 돌아서서 잠시 내려 딛으니 허름한 집 한 채 있고, '세계선교 훈련원' 간판이 보인다.
임도따라 다시 오르니 길 위로 물이 흐른다.
길 옆 암벽 위에 자리잡고 사는 소나무들이 멋지다.
임도따라 오르니 해발 500m, 콘크리트 길을 만나니 이젠 볕이 무서워 진다. 뙤약볕 아래 또 이런 길로 올라가야 된단 말인가?
여지껏 임도따라 걸으며 고생한 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점심먹고 그 방향으로 갈 걸 기사님이 잘 못 가르쳐 줘 고생한다며 한 마디씩, 여기까지 왔으니 할 수 없지...
산위로 피어 오르는 뭉게 구름이 작열하는 날씨를 암시한다.
산행 시작 전 지도보며 원창고개에서 내려 수리봉으로 능선타고 올랐으면 좋겠다며 얘기하다
길이 없으면 낭패라며 포기하고 안 내렸더니... 뒷쪽의 이정표. 길이 이렇게 좋은 줄도 모르고 고생만...
약올라 하며 그늘에 잠시 서 있으니 작은 차 한 대가 올라오고 있다.
일행 한 사람 무릎이 아프다며 힘들어 하던 참이라 부탁하니 태워준다. 다행이 자리가 있어 여자 셋 모두 탔다.
남자 일행들은 뙤약볕 아래 고도를 높이며 걸어 오른다.
녹두봉 산 꼭대기에 있는 군 부대, 정수기 물 필터 교환하러 가는 세일즈 우먼,
맘씨 좋은 젊은 여인 덕에 4km나 되는 고개 길을 편안히 가고 있다.생각만 해도 아찔한 구간 이었는데...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태워준 기사님. 본인은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이니 갈 수 있지만 "녹두봉 정상은 군 부대가 있어 일반인은 오를 수 없어요."한다.
4km나 되는 콘크리트 오르막을 10분 동안에 거뜬이 올려다 주고 하산 길까지 자세히 가르쳐 준 후 녹두봉 정상을 향한다.
우리는 좌측 임도로 향하고.
산 기슭에 있는 안내문에는, 유실된 지뢰를 아직 다 찾지 못했으니 산에 들어서지 말란다.
하루 종일 걷다 하산 직전 갈림길에서 이제 겨우 한 컷,
여기 저기서 피어오르는 뭉게 구름이 보기엔 멋진데 웬지 심상치 않다.
대룡산 정상 전망대가 보이는 가운데
하산 길을 택했다.
한참을 내려 섰는데 반대편에서 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더니 "이 지도 누가 그렸요?"(빨간 줄)
"왜요?"
"여기 녹두봉은 갈 수 없어요, 갈 수도 없는 곳을 갈 수 있는 것 처럼 그려 놨으니 고생 하시지요."
"녹두봉 가는 능선은 철망으로 되어 있어 다닐 수가 없고, 대룡산 정상엔 전망대가 있어 전망이 시원해요."
"그래요?"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도 여기보다 편해요."
"감사 합니다."
전망대라는 이정표는 보았어도 거리가 얼마인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몰라 그냥 내려 섰던 것이다.
가뜩이나 1진으로 시간이 많이 걸려 하산 약속 시간 못 지킬까봐 그랬는데 다행히 뒤에 오는 남자 일행이 있어 용기를 갖고 다시 되돌아 섰다.
앞에 가는 여자 일행 한테 먼저 가라 얘기하고 된비알을 오르며 뒤 일행한테 연락을 취했다.
"내려가다 말고 대룡산 정상이 가고 싶어 다시 오르고 있어요."
"아래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 왔으니 빨리 다녀 오세요."
큰 길로 다시 올라 나무 계단 이용해서 정상을 향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니 "혼자서 무섭지 않느냐?" 한다.
대룡산 정상.
기념 남겨 줄 사람이 없어 가방과 모자로 대신한다.
내려서야 할 골짜기가 발 아래로 보인다.
춘천 시가지에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대.
안내판을 따라 하나 하나 짚어가며 조망. 가까운 춘천호나 삼악산까지는 잘 보이는데
오후로 되며 운무가 끼어 먼 곳의 화악산은 흐릿하다.
전망 바라본 후 내려 가려는 참인데 남자 일행 올라온다. 잘 되었다 싶어 셔터 눌러달라 부탁하니 세명 외 나머지는 하산 했단다.
그냥 하산 하려다 정상에 간다는 연락에 같이 하산 해야하니 할 수 없이 왔단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그래도 이렇게 좋은 전망을 볼 수 있어 좋지요?
하루 종일 임도 따라 걷기만 하고 정상을 못 밟는다는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억울해서 왔지요."
전망대를 내려와 뒤돌아 올려다 본 모습.
처음에 내려딛던 계곡 하산로 보다 능선으로 하산하니 걷기에 훨씬 편하다.
나무 사이로 올려다 본 구름, 구름이 많아지며 하늘을 자꾸 가린다.
거의 다 내려와 흐르는 물에 머리 헹구고, 땀 닦고.
주차장에 도착하여 개인 집 잔디 넓은 마당에서 밥 먹고나니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나와 함께 계곡으로 내려섰던 여자 둘, 뒤에 오던 남자 일행 몇 명은 계곡로로 하산하여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대룡산.
빗방울이 제법 굵다. 하산 후에 비가 내리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나 저나 같이 내려오다 아래로 간 일행 비 맞아 어쩌나...
물 속으로 잠수하는 빗방울이 범상치 않다.
귀가하며 일행 태워 춘천 가도 달리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 붓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더니 아예 콩알 만한 얼음덩이, 우박이 쏟아지니 차 유리가 깨질 것 같다.
많은 차들이 달리지 못하고 길 가에 세우고 비를 피하고 있다.
청평 가까이 오니 '언제 비가 왔더냐?'다. 비에 젖은 차가 길을 적실 뿐 서울 방향엔 전혀 비내린 흔적이 없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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