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문화,여행)

전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특별전.

opal* 2008. 7. 3. 22:02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기원전 6C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 조각상.

 

잔 모양 토기’(기원전 4000년)에는 뿔을 과장되게 묘사한 염소가 등장하고 몸 전체에 붉은색 염료를 칠한

주전자(기원전 1200년∼기원전 1000년·사진)도 흑소나 수사슴 모양. 공통점은 뿔, 페르시아인들은 뿔에 주술적 힘이 깃들었다고 믿어

뿔을 지닌 소, 사슴, 양을 신성시했다. 숭배의 뜻으로 이 동물들을 본뜬 그릇과 잔을 많이 만들어  페르시아 유물에 유독 뿔 모양 잔이 많다.

  

세계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날개 달린 사자 모양 뿔잔.기원전 5C, 높이 21.3cm,
이란이 자랑하는 최고의 유물이자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 아케메네스 왕조시대엔 사자머리 모양의 뿔잔이 유행했다.
이 시기의 사자는 눈 아래 눈물 모양의 주름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날개 달린 사자 장식 황금
‘사자 장식 잔’(기원전 1300년∼기원전 1200년·사진)처럼 사자를 형상화한 페르시아 유물이 많다. ‘

페르시아-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생각의 나무)을 쓴 아나 반잔 이탈리아 밀라노 일륨대 교수에 따르면 사자는

악한 적을 쓰러뜨리는 용맹한 통치자와 동일시됐다.  또 페르시아의 신화에는 시모르그라는 신성한 새가 등장한다.

 ‘새 무늬 은병’(기원전 700년∼기원전 600년)의 새가 시모르그. 날개 달린 사자는 용맹한 통치자에게 신성함을 부여한 셈이다.

 

페르시아인들의 용맹함과 세련되니 공예술을 보여주는 황금잔.

기원전 13~12C, 높이 10cm, 따로 만든 세 개의 사자 머리를 못으로 고정시켜 장식, 지금은 두 개만 남았다.

돋을 새김 기법으로 사자의 몸체를 표현한 뒤 가는 선으로 갈기를 정교하게 표현. 사자 얼굴이 입체적, 사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래쪽에도 구멍이 뚫려 있는 뿔잔.

‘날개 달린 사자 장식 황금 뿔잔’(기원전 500년∼기원전 400년) 아래에도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신이나 왕에 대한 의례 때 술이나 음료를 뿔잔에 부어 아래쪽에 난 구멍으로 흘러내리면 피알레(phiale·사진)라고 부르는 그릇에 받아 마셨다.

 전시작 중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 이름을 새긴 황금 그릇이 바로 피알레 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뿔의 영혼이 음료에 스며든다고 믿었다. 

 

황금 목걸이. 기원전 10C, 원통 모양의 구슬 56개, 둥근 구 모양 구슬31개, 아리안족을 상징하는 Q 모양의 장식물 3개를 꿰어 만들었다.

 

황금 마스크
이란 루리스탄 칼마칼 지역의 동굴에서 출토된 황금 마스크, 기원전 10C, 높이 10cm.가면 곳곳에 작은 구멍이 있고 못도 남아 있어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어딘가 부착했거나 죽은 자의 데드 마스크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두 눈에 보석이 박혀 있었으나 알렉산더대왕과 치른 페르시아 전쟁 때 사라졌다고 한다.

 

눈부신 황금 가면.

소아시아의 리디아와 지금 아프가니스탄 인근의 박트리아는 고대 세계의 노다지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동쪽의 박트리아와

서쪽의 리디아를 동시에 지배했고 엄청난 황금이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흘러들어왔다.

경복궁 근정전에 해당하는 아파다나 옆에 황금을 쌓은 보관 창고를 따로 둘 정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함락한 뒤 빼앗은 황금을 낙타 2만 마리, 마소 3만 마리에 싣고 갈 정도.

 

아후라 마즈다를 조각한 부조(사진).


아후라 마즈다는 페르시아의 대표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과 어둠의 신

아리만의 대결로 세상을 봤다. \선과 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우며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한 셈, 아후라 마즈다의 양쪽에는 날개가, 아래에는 꼬리가 달려 있다.

기독교의 천사 형상은 사실 아후라 마즈다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페르시아 인장.

페르시아 인장(사진)은 우리 도장과 달리 인장 옆면에 무늬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사람들은 멀리 화물이나 서신을 보낼 때 포장 끈을 묶은 매듭 위에 점토 덩어리를 붙였다. 그러고는 인장을 눕혀 한 바퀴 굴리면

소유자를 표시하는 특유의 무늬가 점토 위에 남는다. 이렇게 마른 점토로 봉인된 편지는 점토를 깨지 않고는 열어볼 수 없다.

인장 무늬는 연회, 동물이 싸우는 모습, 왕이 동물을 잡는 장면 등 다르다.

 

동물머리 장식 단검. 손잡이 양 끝에 사자 머리가, 날 안쪽 끝에 염소의 얼굴 무늬가 장식된 단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대표적 황금 유물.
기원전 5C, 길이 41cm, 사자와 염소의 정교한 무늬가 당시의 빼어난 금속공예술을 보여준다.
한 가운데엔 홈을 만들어 세련미를 추구했다. 실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왕권의 상징물로 보인다.
  

사진 중 우측은 우리나라 보물 635호, 신라 장식보검 (5~6C)- 삼국시대 전형적인 검과 형태가 다르게

 칼코등이(손자루와 칼날의 경계 부분)가 특이하여 오른쪽만 뭉툭하게 튀어나와 있다.

 

사진 왼쪽의 페르세폴리스 출토 ‘아키나케스(단검)를 조공하는 메디아인 부조’(아케메네스 왕조)

칼코등이가 오른쪽만 뭉툭하게 튀어나온 모습과 똑 같다.  페르시아의 아키나케스가 신라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보물과의 비교.

 

 

장식보검
소 장 처 : 국립경주박물관
시대 : 신라 5~6세기
재 료 : 금속
크기 : 36.0cm

경북 경주시 황남동의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칼. 보물 제635호.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흔히 출토되는 환두대도(環頭大刀) 따위의 칼과는 달리 그 형태와 문양이 매우 화려하고 특이하다.

미추왕릉지구의 2백여기 고분들 중 1973년 계림로 공사 때 노출된 유물의 하나로서, 철제 칼집과 칼은 썩어 없어져버리고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 있다. 피장자의 허리 위치에서 발견되었는데, 자루의 끝부분이 골무형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에 붉은 마노(瑪瑙)를 박았다. 칼집의 맨 위의 납작한 판에는 태극무늬 같은 둥근무늬를 넣고,

무늬 사이의 공간에는 역시 붉은 마노를 박아넣었다.

칼 끝 부분인 아래쪽은 사다리꼴로 되어 있으며, 이 사다리꼴은 다시 3개 부분으로 구획되었는데,

가장자리는 S자형 무늬로 돌려져 있고 가운데에는 역시 구슬을 박아 장식하였다.

태극문은 일반적인 태극문과는 달리 3개로 구획되어 휘도는 느낌인데, 태극은 길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시장에 아래 사진에 있는 병 모양의 전시물이 보이는걸 보면 그 시대에도 우리와 왕래가 잦았었나 보다.

 

5세기 신라시대의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국보 193호 봉수병.

 

'Story(문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고 김삿갓 문학관  (0) 2008.07.16
방랑시인 김삿갓  (0) 2008.07.16
취나물  (0) 2008.06.03
그림 전시회  (0) 2008.06.01
해도 너무 한다.  (0) 2008.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