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박 경리 - 마음,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우리들의 시간

opal* 2008. 7. 17. 18:30

 

마음

 

                                  박 경리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 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 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 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쫓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 경리

 

비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 십 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 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아 휑뎅그레한 그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꼬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이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이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의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

                                                                                             (현대문학 2008년 4월호에 남긴

                                                                                                  마지막 시 -옛날의 그 집- 중에서)

 

 

 

우리들의 시간

 

                                박 경리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쳐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2008년 5월 5일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