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박 경리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 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 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 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쫓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 경리
비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 십 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 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아 휑뎅그레한 그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꼬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이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이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의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
(현대문학 2008년 4월호에 남긴
마지막 시 -옛날의 그 집- 중에서)
우리들의 시간
박 경리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쳐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2008년 5월 5일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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