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조 태일- 可居島 , 곽 재구- 可居島 편지

opal* 2008. 10. 2. 19:18

 

 

 

可居島 편지

 

                                           곽 재구

 

한 바다가 있었네
햇살은 한없이 맑고 투명하여
천길 바다의 속살을 드리우고
달디단 바람 삼백예순 날 불어
나무들의 춤은 더없이 포근했네

그 바다 한가운데
삶이 그리운 사람들 모여 살았네
더러는 후박나무 숲그늘 새
순금빛 새 울음소리를 엮기도 하고
더러는 먼 바다에 나가
멸치잡이 노래로 한세상 시름을 달래기도 하다가
밤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 한 몸 되어
눈부신 바다의 아이를 낳았네

수평선 멀리 반짝인다는
네온사인 불빛 같은 건 몰라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누가 골프장 주인이 되고
누가 벤츠 자동차를 타고
그런 신기루 같은 이야기는 정녕 몰라

지아비는 지어미의
물질 휘파람소리에 가슴이 더워지고
지어미는 지아비의
고기그물 끌어올리는 튼튼한 근육을
일곱물 달빛 하나하나에
새길 수 있다네

길 떠난 세상의 새들이
한 번은 머물러 새끼를 치고 싶은 곳
자유보다 소중한 사랑을 꿈꾸는 곳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네
수수 천년 옛이야기처럼 철썩철썩 살아간다네.

 
 

 

 

 

 

可居島

                                  조태일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같지 않는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내며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이곳까지는
차마 생각 못했던,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파도로 성 쌓아
대대로 지켜오며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당할아버지까지 한 식구로 한데 어우러져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

비바람 불면 자고
비바람 자면 일어나
파도 밀치며
바다 밀치며
한스런 노랫가락 부른다.

산아 산아 회룡산아
눈이 오면 백두산아
비가 오면 장내산아

바람불면 회룡산아
천산 하산 넘어가면
부모형제 보련마는
원수로다 원수로다
산과 날과 원수로다 *

낯선 사람 찾아오면 죄 많은 사람 찾아오면
태풍 세실을 불러다가
겁도 주고 달래보고 묶어보고 풀어주는
바람 바람 바람섬,
파도 파도 파도섬.

길가는 나그네여!
사월 혁명의 선봉이 되어
반민주 반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
싸우다가 십구일 밤 무참히 떨어진
십구세의 대한의 꽃봉오리가 여기
누워 있다고 전해다오 *

자식 길러 가르치고
배운 자식 뭍으로 보내
나라 걱정, 나라 위해
목숨도 걸 줄 아는
멋있는 사람들이 사는
살 만한 땅. 

 

                                                                       *가거도 주민들이 그곳 전설을 민요화해서 부르는 노래.
                                                                      * 이곳 출신으로 서울로 유학,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재
                                                                          학중이던 金富連군이 4.19혁명에 가담하여 산화했는데,
                                                   그 기념비가 이 가거도에 세워져 있음.


                                                                                            -시집 <가거도>(창작과비평사, 1983)

 

 

 

1941 전남 곡성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64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이 당선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아침 선박(船舶)>    선명문화사  1965
시집 <식칼론(論)>    시인사  1970
시집 <국토(國土)>    창작과비평사  1975
시집 <가거도>    창작과비평사  1983
시집 <연가(戀歌)    나남  1985
시집 <별 하나에 사랑과>    학원사  1986
시집 <자유가 시인더러>    창작과비평사  1987
시집 <산 속에서 꽃 속에서>     창작과 비평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