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곽 재구- 묵언2, 겨울의 춤, 마음,

opal* 2008. 11. 19. 10:50

 

묵언 2

 

                                               곽 재구

 

소금 속에 혀를 던진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은밀한 행복을 꿈꾸어 온 혀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끝내 입 속의 적막을 사랑하지 못한 혀

좌석버스에 앉은 혀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혀
죽은 빵을 먹는 혀
생선 비린내에 길들여진 혀
형제의 눈물은 쓸어안지 못하고
아침 햇살과
단풍잎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혀
새로 창출된 권력과
남가주대학 출신의 비디오 자키와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혀
깨진 꽃병으로 걸어가는 혀
63빌딩의 층수를 헤아려보는 혀
자명종소리에 매달린 혀
미망의 혀
죽은 청춘의 혀

상처뿐인 혀 하나를
불같이 뜨거운 소금 구덩이에 던진다.

 

 

겨울의 춤

                                             곽 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텐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춤을 익혀야겠다
바람에 들판의 갈대들이 서걱이듯
새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흩날리듯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 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한 칸 구들의 온기와 희망으로
식구들의 긴 겨울잠을 덥힐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채찍처럼 달려드는
겨울의 추억은 소중한 것
쓰리고 아프고 멍들고 얼얼한
겨울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 젖혀야겠다
죽은 새소리 뒹구는 벌판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마음

 

                                          곽 재구

 

 나무와
나무 사이 건너는

이름도 모르는
바람 같아서

가지와
가지 사이 건너며

슬쩍 하늘의 초승달
하나만 남겨 두는
새와 같아서

나는 당신을
붙들어 매는
울음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한 번 떠나간
나루터의
낡은 배가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