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심 순덕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버스 안에서

opal* 2012. 5. 1. 21:00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 순 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 아버지를 만나다 -

                                              심 순 덕

아침마다 시내버스를 탄다.
세상살이와 만나곤 한다.
한 날. 어떤 할아버지 모습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허연머리.
굻은 주름.
가녀린 어깨.
중절모.
지팡이.
아! 아버지!! 부를뻔 했다.
뒷 모습이.
옆 모습이.
아버지랑 꼭 닮아 얼마나 놀랐는지...
끝내 돌아보지 않은 할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보고싶어 하는 내게 그렇게 와 주시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