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위한 파반느
이 병금
세상이 잠시 황금빛으로 장엄하다
노란 은행잎들이
마지막 떠나가는 길 위에서
몸 버리는 저들 중에 어느 하나
생애에서 목마른 사랑을 이룬 자 있었을까
마침내 행복한 자가 그 누구였을까
최후까지 등불을 끄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만이 저 혼자 깊어간다
몸은 땅에 떨어져 나뒹굴지라도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고
남은 불꽃을 당기는 저들만의
그리움이 안타깝게 쌓여가고 있다
파반느-16C초 이태리에서 발생하여 17C 중엽까지 유행했던 궁중무곡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 유명.
가을날
이 병금
누군가의 옷자락이 빨랫줄에 매달려
남은 햇살에 반짝이고 있을 때
깊이 모틀 슬픔으로 몸 뒤척이고 있을 때
그 옷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바람에 잠시 빌려 입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늘에게
이 병금
꼬옥 안아주고 싶다
구부러진 오늘의 등을
부드러운 저녁의 고양이 털을
커다랗게 벌어진 저녁의 입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내일은 더 멀리까지 가 보자며
나 혼자서 걸어간다
오늘과 내일의 물방울이 만나
뒤섞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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