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문화,여행)

탐방) 현충사

opal* 2019. 4. 9. 23:00



예당호 둘레길 걷는 날,

트레킹 끝내고 나니 비가 조금씩 내린다.

시간 여유가 있어 귀가길에 둘러 볼 수 있는 현충사로 이동.

다녀온지가 오래되어 가물가물 하던 참인데 마침 잘 되었다. 

 

현충사 마당에 있는 '필사즉생 필생즉사'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쟁에 임하던 임전훈(臨戰訓)으로,

12척의 배로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 전날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문구 이다.


오랫만에 오니 주차장까지 넓히고 단장이 잘 되어 있다.











왜군의 두 번째 조선 침략 丁酉再亂.

1593년 4월 왜군이 한양에서 경상도 일대 해안으로 물러난 이후 지루하게 이어지던 강화 회담이 끝내 결렬되자
1597년 일본은 14만 1,5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다시 침략하여 남해·사천·고성·하동·광양, 구례를 거쳐 남원을 점령한 후
좌, 우군으로 나누어 좌군은 남쪽으로 우군은 충청도로 북진했다.

9월 왜군은 충청도 지역까지 북상했으나 권율·이시언의 조명 연합군은 직산에서 일본군의 북상을 막았고,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 역시 12척의 함선으로 300여 척의 일본수군을 명량에서 대파하였다.
수륙 양면에서 몰린 일본군은 패주하여 남해안 일대에 몰려 있었다.

1598년 1월 권율 지휘하의 조선군은 울산의 가토군을 공격했고, 각 지역에서 일본군 잔당들을 섬멸했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왜군은 철수하기 시작했고, 
11월 이순신 휘하의 수군이 노량에서 일본의 퇴로를 차단하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노량해전을 끝으로 일본과의 7년에 걸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다른 벼슬아치들은 조정에 앉아 이러쿵 저러쿵 할 때 이원익 대감은 이순신 장군이 있는 남해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도와줬다는 이원익 대감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전 듣고 감동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