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겨울나무(장석주), 잔설(신석정)

opal* 2021. 1. 30. 18:04

 

술레잡기하기 위해 일찌감치 먼저 나왔던 잎이 꽁꽁얼어 상처를 입고

나뭇잎 속에 숨어 무서운 한파를 이겨내고 있다.

 

 

아침에 살짝 내린 눈

양지엔 다 녹고

음지에만 남아 있다.

 

겨울나무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흠 없는 혼 하나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장석주 시선집 '꿈에 씻긴 눈썹' 중에서

 

 

잔설(殘雪)

                          신석정

 

​남풍에 묻어오는
엊그제 입김에도
동백꽃 내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군자란도 뾰조롬히
꽃대를 올려놓고

​호랑가시 빨간 열맬
쪼아먹던 산새

 

​문득 열어보는
창문소리에 놀래 날고
잔설(殘雪) 부신 설악을
쪽빛 하늘이 넘어가고 있었다

                                                      ​신석정辛夕汀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中 (19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