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30회(29-1구간. 고치령~미내치~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

opal* 2006. 2. 21. 15:32

 

집을 나서니 안개가 자욱해 가로등 불빛조차 멀다. 차 앞 유리 앞 산악회 전광판이 안 보여 안개 때문인 줄 알았더니 차가 바뀌었다.


05:30. 출발하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함께 다니던 산우한테서 잘 다녀오라는 문자가 온다.

열심히 잘 다니던 산우였는데 다리가 아파 몇 달 동안 못 나오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08:30. 단양휴게소에 도착해 간단히 아침 요기. 안개가 걷히니 날씨가 좋다.


09:30. 단산면 좌석리 도착. 좌석리 마을 분한테 예약한 1ton 짜리 화물차에 올라타고 고치령까지 이동 한다.

일행이 많아 두 번에 나누어 타고 시간을 절약한다. 돈은 들지만 거리가 워낙 멀으니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 번 산행 날 국망봉에서 신선봉 쪽으로 잘못 갔으니 알아두었다 혼자 와 국망봉으로 보충산행을 해도 되겠다.

속도늦은 후미팀이 먼저 타고 선두 그룹이 나중에 탄다.


09:40. 고치령(760m) 도착.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잇는 고개인데 길옆으로 산신각과 장승들이 서 있다.

대간 길을 연결해서 걸을 수 있는 행복한 이 순간. 2주 전의 종주 날 집안의 큰 행사로 참석을 못했는데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려 다른 곳을 산행했다니 내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백두대간 종주시작 후 한 번도 안 빠지고 다닌 정성을

 백두대간 산신령님께서 알고 계신가 본데 산신각에서 인사도 없이 그냥 올라섰으니 못된 사람일까?


얼은 눈 속으로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오르니 금방 흐르는 땀과 거친 숨소리에도 사뿐 사뿐 가벼운 몸짓과

좋은 컨디션은 청명한 날씨 탓일까? 아님 예쁜 야생화님에게 착용감 좋은 아이젠 선물을 받아서 일까?


09:50. 헬기장 도착. 돌아서서 바라보니 비로봉과 국망봉은 알겠는데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다른 봉우리는 구별을 못 하겠다. 잡목으로 우거진 숲속, 등산로인 능선엔 바람으로 인해 눈이 더 많이 쌓여

앞 사람들이 먼저 도망?가며 깊게 낸 발자국을 따라 열심히 따른다.


10:45. 미내치(820m)도착. 이정표만 서 있을 뿐 고개 같지도 않고 여지껏 걷던 숲속 그대로 인데

작고 귀여운 새소리로 봄이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조금 더 걸으니 숲 속 나뭇가지 끝 위로 멀리 1097m봉이 보인다.


11:30. 잠시 서서 과일과 물을 마시고 다시 오르며 고도가 높아지니 와 닿는 바람이 차다. 뺨을 에이던 북풍한설도 어느새

봄바람으로 바뀌었다. 오르며 뒤 돌아보니 지나온 950봉우리도 제법 높다. 바람과 눈이 없는 양지바른 능선과,

눈이 많이 쌓여 대조를 이루는 잡목만 우거진 지루한 능선에 짧은 거리 마다 이정표가 있는 것은 국립공원의 위력인가 보다.

고치령까지 화물차를 이용할 때 30분 뒤 도착한 나중 팀의 선두가 두 시간 만에 스치고 추월하니 속도의 차이를 느낀다.


12:00. 1096.6m봉. 오늘의 구간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표지석도 없는 무명봉 이다. 흰 눈만 잔뜩 쌓인 헬기장으로 전망도 없다.

흰 눈에 반사되는 빛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서며 이정표를 확인하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딛는다.


12:25. 마구령(810m) 도착. 이제야 반 정도 왔을까? 눈이 살짝 녹아 질척거리는 비포장도로에 차가 지나간다.

길옆 눈 위에 앉아 떡과 뜨거운 물을 마시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포만감을 안고 오르고 또 오른다.


12:50. 흰 눈이 헬기장을 덮고 있는 894봉.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나씩 매달린 빨갛고 노란 리본이 이채롭다.

처음으로 전망이 조금 보여 주변의 산들을 나무 사이로 볼 수 있다. 뒤로는 조금 전에 지나온 1097봉이 높다랗게 보이고

앞으로는 가야할 신달산이 멀리 높다. 내려서는 하산 길은 따뜻한 햇살에 눈이 녹아 젖은 낙엽을 밟으니 더 미끄럽다.


가느다란 나무가 휘어지도록 눈이 쌓인 지루한 능선을 혼자 걸으며 제각기 다른 수피의 아름다운 모양을 담는다.

태백산 산행 날 설경이 멋져 마냥 찍다보니 230여 회의 셔터를 눌렀던데 별 것 아닌 피사체까지 담고 있으니 동행인이 있을 리 없다.


13:50. 또 하나의 높은 봉우리, 이곳엔 제법 바위가 있으나 전망은 없다. 5분 뒤 헬기장인지 공터인지 눈이 쌓여 구별하기 힘들다.

멀리 높은 산을 바라보고 다시 내려딛는다. 작년엔 3월 초 종주 때 빙화를 보았기에 기대 했는데 눈만 밟고 걸으려니 지루하다.

흰 눈으로 입체감 좋게 장쾌하게 뻗은 산줄기의 모습도 못 보고 봄을 맞이하는 건 아닌지? 겨우내 눈을 실컷 보고도 아쉬워한다.


늦은목이 3.9km, 2.9km, 1.9km, 1km마다 이정표가 서있는 산비탈을 돌아 올라섰다 내려서는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능선에 눈이 많이 쌓여 옆으로 돌아가는가 하면 내리막의 양지엔 눈 녹은 물이 흘러 신발이 젖는다.


15:00. 갈곶산(966m, 봉황산 갈림길) 도착. 이곳에선 리본이 많이 매달린 좌측으로 하산해야 한다. 우측으로는 봉황산으로 가는 능선 줄기인데 산 이름 보다는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가 더 알려진 곳. 늦은목이가 1km남아 희망을 안겨준다.


15:20. 가파른 내리막을 미끄러지며 내려서서 늦은목이(800m) 도착. 앞으로 가야할 신달산을 목을 젖히며 바라본다.

이렇게 급경사진 오르막을 다음엔 어떻게 오를지 걱정이 되지만 그것은 그때 일이니 오늘은  여기서 대간 길과 인사하고

잣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선다. 능선에서 몇 그루 보던 소나무를 제하고 처음 보는 군락의 푸른 잎이 반갑다.


눈 쌓인 얼음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 따라 내려서니 제일 걷기 싫은 콘크리트 포장 비탈길.

종일 착용했던 아이젠을 벗어들고 차가 기다리는 저수지 옆에 도착하니  늦은목이에서 한 시간이 걸린 16:20.

저수지의 물은 얼어 있어도 버들강아지가 핀 것을 보니 봄은 역시 곁에 와 있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6시간 40분.


2006. 2. 21.(火). 백두대간 29-1구간을 종주하다.

            (좌석리-고치령~미내치~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오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