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출발. 졸다 깨니 고속도로에 안개가 자욱하여 가시거리가 짧다. 고도 높은 정상의 상고대를 기대해도 될것 같다.
08:10. 단양 휴게소에서 된장국으로 아침식사. 20분 안에 식사를 못 끝내면 예전 대로 떡이나 김밥으로 바꾸겠다며 재촉한다.
09:20. 지난 구간 때 하산했던 어의곡리 도착. 하차하여 포장도로 따라 세밭교를 건너고 계곡을 건너 숲으로 들어선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눈이 녹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지난번에 보았던 해발 460m의 표지목을 보니, 위에서 내려오며 차례 대로 숫자를 세던 생각이 난다. 다음 표지목이
보이기 전 갈림길에서 지난번에 내려온 곳의 반대인 우측으로 들어선다. 지름길인가보다 생각하며 앞 사람들 따라 오른다.
09:55. 얼음판으로 변해버린 계곡으로 들어서서 모두들 아이젠을 착용하고 바위 틈을 비집으며 빙판으로 오른다.
물이 흘러내리며 얼어붙어 곳곳이 얼음폭포 같다. 양손에 스틱을 쥐고 당당하게 오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발만 탁탁 찍으며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오르는 이도 있다. 빙판에 미끄러질까봐 모두들 조심조심 오른다.
넓은 빙판 한쪽 가장자리에서 각진 바위에 물이 흘러 내리며 얼어 모서리 없이 둥글게 변해버린 계단을 차례 대로 올라선다.
보폭 좁은 내가 올라서기에는 좀 높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야~" 발 하나를 올려놓고 위로 올라서는 순간...
그대로 뒤로 미끄러지며 엉덩이와 가방만 빙판에 닿은 채 벌러덩,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니 뒤에 계시던 분이 잡아주다
주저앉으며 함께 미끄러진다. '아 이젠 난 죽었다 저 아랜 폭포 같은 낭떠러진데' 순식간에 대책 없는 일이 일어난다.
바로 뒤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올라설 차례를 기다리던 분이 잡아줘 다행히 아래로 떨어질 것을 모면 했다.
'지난번에 걸어 내려오던 좋은 길을 놔두고 이게 뭐람?' 요즘 새로 온 대장이 지름 길이라고 계곡으로 안내를 한 것이다.
11:00. 한 시간 이상을 여전히 계곡 따라 오르는데 얼음 위를 걸을 땐 진땀이 난다. 한번 혼나고 보니 얼음만 보면
오금이 저리며 발 딛을 곳만 찾느라 신경이 쓰여 정신없이 오른다. '빙벽 훈련을 나온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뭐지?'
얼마나 더 가야 계곡을 벗어날까? 위로 오를수록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르니 밟으면 깨질 것만 같다.
11:40. 계곡과 헤어져 눈 쌓인 숲속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과일로 목을 축인다. 나무사이로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더니 오를수록 아득하게 멀어진다. 너무 가파르니 속도는 커녕 몇 발작씩 오르다 쉬게 된다.
신갈나무 숲을 지나 철쭉 밭 비탈. 돌아서서 바라보니 낮은 나무 위로 비로봉이 머리에 흰 모자를 쓰고 있다
12:05. 국망봉(1420.8m) 도착. 오늘로 국망봉 산행이 세 번째 인데 생각보다 바람이 없다. 오늘 처음 참석한 남자 두 분이
힘들어 하며 쉬자하니 후미대장님 한마디 하신다. "이렇게 가다간 선두와 세 시간은 차이 납니다."
두 남자들, 차 안에서는 북한산과 관악산을 자주다녀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큰소리 했었단다.
12:15. 떡과 뜨거운 물로 충전하고 상월봉을 향한다. 지난번에 하산하던 어의곡리 이정표. 이곳부터는 초행길인데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상월봉까지의 능선이 봄엔 무척 아름답겠다. 가분수로 생긴 입석바위를 중턱에 세워놓은
상월봉(1394m)을 힘들게 올랐다 내려딛는 길은 그늘진 급경사 비탈이라 많은 사람들의 발에 다져진 눈이 빙벽을 방불케 한다.
12:40. 해발 1100m 이정표(상월봉 0.6, 마당치 7.1km), 고도가 높아 눈이 많은 능선에 찬바람은 불어오나
참을 만하니 다행이다. 얼룩무늬의 수피를 가진 나무 숲을 지나니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또 있다.
12:50. 키가 낮은 이정표. 우측으로 마당치 6.5km, 오던 방향은 비로봉 5.2km,
직진방향엔 반이 잘려진 판에 빨간 글씨로 출입통제라고 써있는걸 보며 '문장대에서 밤티재로 하산 때나
지리산 칠불사로 하산 할 때도 출입 금지구역으로 갔는데'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떠올리며 앞 사람들 따라 직진한다.
신선봉 0.9km의 이정표를 지나고 해발 1210m의 표지목을 지나 비탈면의 바위 길을 오르다 돌아보니
국망봉과 상월봉이 한일자로 보인다.
13:30. 1220m의 표지목을 지나고 1361m의 이정표. 남천리 8.5, 구인사 7km.
개인이 표시해 놓은 신선봉 표시의 해발높이와 지명이 어쩐지 이상하다. 차 안에서 대장님이
"국망봉 지나서는 고도가 떨어져 덜 힘들다"고 했는데... 뭔가 잘못 되었구나.
빨리 돌아서서 내려가면 내 뒤에 걷던 후미대장님은 만날 수 있는데... 그러나 어쩌지? 조금 전에 이쪽으로 세 명이 올라갔는데,
그 앞에는 아무도 없었을까? 전화도 안 되는 불통지역에다, 배터리는 밥 달라 신호하니 답답하기만 하고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틀렸으면 어디부터 틀린 걸까? 틀린 건 확실한가? 일단 앞 사람을 부른다. 사람 소리는 나는데 목청껏 불러도 대답이 없다.
우리 팀이 아닌가? 호루라기를 꺼내 앞과 뒤를 향해 불어보나 어느 곳에서도 대답이 없다.
'얼은 눈을 밟는 소리가 꼬드득 꼬드득 들리니 못 들을 수도 있겠구나, 아직 늦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
13:40. 날카로운 바위틈을 비집고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서니 국망봉과 상월봉뿐만 아니라 비로봉까지 한 눈에 보인다.
가던 방향으론 더 높은 봉우리의 바위산이다. 방향을 보니 틀린 게 확실한데 이젠 어떻게 한다?
고치령까지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는지 확실치 않다. 아침 차 안에서 지도 한 장 달라하니 오늘따라 왜 그리 인색하게
안 주던지, 아님 지난번에 나누어줄 때 같은 구간이니 다음에 다시 가져오라 하던지... 지도 한 장의 위력을 느낀다.
(2회 걸어야 할 구간이 다 그려진 지도를 지난번에 주고, 오늘은 새로 나온 사람에게만 나누어 준 것이다.)
혼자 돌아서서 내려가야 되나? 가던 길로 진행해야 하나... 오도 가도 못하고 잠시 서 있으니 갈등만 커진다.
어디든 알려주기 위해 앞 뒤를 향해 호루라기를 계속 불어보지만 대답은 커녕, 메아리조차 없다.
앞의 세 사람 중 여자는 오래 전에 한 번 본 구면, 두 남자는 국망봉에서 힘들다며 더 쉬어 가자던, 백두대간 산행 중에 한 번도 못 본 사람들이다. 구면이면 혼자 뒤돌아 내려가겠는데... 오지랖이 너무 넓은 걸까? 이젠 후미대장까지 다 지나갔을 테고,
세 명이 잘못 간 것도 분명하다. 마음은 돌아서서 내려가야지 하면서도 발은 자꾸 높은 곳을 향해 기어오른다.
백두대간은 토요산행 기회에 다시 오면 되지...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야 만날 수 있을까?
14:10. 나무가 없는 민둥산 꼭대기에 남자 한 사람 모습이 보여 소리 지르며 쫓아 올라서서 지도 있느냐 물으니 차에 두고 왔단다.
호루라기 소리 못 들었냐 했더니 들었단다. 지금 방향이 틀렸는데 어디로 가고 있느냐 했더니 오늘 처음 나와서 아무것도 모른단다.
다리가 아파 쉬고 있단다. 일단 두 사람에게 빨리 연락하라 하고 휴대폰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다시 대장님께 전화하니 불통.
앞 사람들에게 소리 질러도 대답이 없다. 시계를 보니 앞 사람들 만나도 이젠 돌아설 수 없는 시간이다.
14:40. 구인사 5.4, 신선봉 3km 이정표. 갈림길에서 앞의 두 사람이 위로 올라섰는지 아래로 내려갔는지를 알 수 없어
꼼짝 않고 서서 연락해 보니 겨우 목소리만 들리다 끊어지기를 수십 번. 앞 사람에겐 돌아오라 하고 어쩔 수없이
구인사로 하산을 결정하고 후미대장님께 보고?를 하지만 여전히 상태가 안 좋아 들리다 말다 끊어지기를 몇 번.
잘 못 왔단 얘기만 겨우 전달 했다. 앞의 두 사람을 내려서는 길에 만나 다리 아픈 분 부축하라며 스틱을 빌려주고
경사가 급한 내리막을 내려딛는다.
15:00. 눈과 얼음사이로 흐르는 물 옆에 작은 바가지가 있어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고 내려서는데
오전 내내 긴장시켰던 얼음계곡이 이곳에서도 또 시작된다.
계곡이라 어둡기는 하고 물이 길로 흘러내리며 얼어 빙판으로 변하고, 어느 만큼을 가야 끝날지도 모른다.
본부에서도 궁금하여 연락은 오는데 통화가 잘 안된다.
15:40. 잡고 내려가야 할 밧줄이 얼음 속으로 보인다. 아찔한 순간.
도저히 얼음위로 내려설 수 없어 뒤로 다시 올라 커다란 바위들이 쌓인 가파른 너덜지대를 택해 기어오른다.
바위에는 눈이 쌓여 어디를 밟아야 안전 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흘러만 가고 목적지 방향은 어딘지도 모른다.
옆으론 암벽이라 더 이상 갈 수 없어 나무를 헤치고 내려오니 여전히 빙판길. 가장자리의 눈을 밟아가며
빙판 계곡을 이리 건너고 저리 건너는데 갑자기 조용필의 '꿈'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춥고도 험한 곳..., 외롭고도 험한 이길을 왔는데...
긴 산행이 오늘 처음이라는 분. 배가 고파 못 가겠단다. 가방에 있는 비상 행동식과 따뜻한 물을 꺼내 주었다.
16:10. 우여곡절 끝에 앞을 가로 지르는 임도를 만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되는지 알 수가 없다. 임도에 내려서니
<신선봉↔구인사 간은 정규 탐방로가 아니니 출입을 통제 합니다. 과태료 50만원> 안내판을 읽고 쓴 웃음 한번 짓고
감각적으로 좌측으로 향해 조금 걸으니 리본하나가 보여 지름길 이려니 생각하고 숲으로 내려선다.
굵은 다래덩굴이 얽히고 설킨 잡목 숲은 낙엽이 잔뜩 쌓여 길은 안보이지만 나뭇가지를 헤치며
용감하게 내려설 수밖에 없다. 사유지인 듯한 경사면의 울타리와 계곡사이로 내려서니 비탈면의 넓은 밭과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며 멀리 집 한 채가 보인다. 뒤돌아 보니 주변 산들이 모두 뾰족하고 가파르게 생겼다.
방향을 모르겠는데 좌측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에 해가 떨어지다 말고 흐릿한 빛을 발하고 있다.
16:40. 허름한 건물을 만나 주인에게 얘기하고 작은 짐차에 네 명이 올라 탔다. 한 분이 다리가 아파 사정하니
젊은 분이 덕평(보발) 차도까지 태워다 주고는 택시를 부르라며 안내해 주고 돌아선다.
구인사까지 부탁해 보니 오늘 할 일이 많아 시간이 없단다. 기사 분께 고맙단 인사 나눈 후 본부와 통화가 되어
단양IC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7시간 20분.
18:00. 대강면 단양 IC근처에서 때 늦은 점심 식사를 하니 남자 한 분이 "이제야 말 하지만 산에서 잘 못 왔단 소릴듣고
남자라도 당황했는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안내 해줘 고맙고 마음이 편해졌다" 고 한다.
대간 종주도 중요한 일이지만 보람있는 하루, 식사 후 일행 만나 귀가행 차에 오른다.
2006. 1. 17(火) 백두대간 종주 28-2구간 걷던 날.
(어의곡리- 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 고개~ 마당치~고치령)
(* 늦은맥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가야 할 것을 직진을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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