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28회(28-1구간,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

opal* 2006. 1. 3. 23:05

 

 05:30. 출발. 2006년 병술년 새해의 첫 산행이며 지난해부터 시작된 백두대간 종주 중 나머지 반의 첫 날이다.

08:10. 박달재 도착하여 얼은 눈 위에 서서 아침식사.  09:05. 단양IC, 

 

09:30. 죽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먼저 세찬 바람이 맞아 준다. 이정표 보니 국망봉 14.6km. 

힘겨운 싸움에 도전하는 각오로 임하려니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걱정 된다. 칼바람으로 유명한 산이기도 하지만

모진 북풍을 계속해서 맞서며 걸어야 하는 방향이라 얼굴까지 잔뜩 싸매고 오르니 누가 누군지 한동안 구별이 안 된다.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헤어져 눈 쌓인 숲으로 오르니 옷을 많이 입어 둔한 몸은 금방 헐떡대고 와 닿는 바람은 차가워도

속에선 땀이 뻘뻘 흐른다.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 뽀드득 뽀드득 얼어붙은 눈을 밟으며 오르니 나무사이로 멀리 중계소가 보이며

그 위로 까마귀 한마리가 세찬 바람에 힘겨운 날개 짓을 하고 있어 보기에도 안쓰럽다.

양지의 오르막. 눈(雪)에 반사되는 빛과 세찬 바람이 눈(目)을 못 뜨게 하고 음지에선 바람 불어오는 쪽의 왼팔이 서늘하다.

여전히 속에선 땀이 흐르고 밖에선 얼어온다.


10:15.  전망대에서 잠시 풍기 시가지를 바라본 후 눈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행의 연속. 가파른 오르막에 걷기도 힘든데

북풍한설이 뺨을 도려낸다. 가지 끝을 거쳐 오는 바람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큰 나무의 가지 끝을 싸고 있는 눈꽃이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다. 오르며 뒤돌아보니 지난번에 올랐던 도솔봉이 우뚝 솟아 인사한다.


제 2연화봉 (1362.6m). 전망대에서 비로봉과 천문대를 배경으로 폼 잡고 섰는데 카메라가 배고프다고 밥 달란다.

기온이 차가우니 배터리가 빨리 소모된다. 장갑벗고 갈아끼우려니 손은 시렵고...


11:20. 소백산 천문대. 예쁜 무늬의 울타리에 눈꽃이 하얗게 피어 더 아름답다.

11:30. 천문대 정상(1380m).  연화봉이란 글씨가 쓰인 커다란 기념석물 앞에서 어느 팀은 이 세찬 바람 속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있다. 얼른 기념사진만 찍고 신갈나무 숲의 가파른 내리막 눈길을 미끄러지며 내 달린다.

제1연화봉을 향하는 오르막의 나무계단. 계단의 난간 기둥과 밧줄에 핀 하얀 눈꽃이 바람 방향대로 얼어붙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눈요기를 선사한다. 내려다보이는 저수지 근처의 동네가 상대적으로 아늑해 보인다.

작은 나뭇가지 끝에 붙어있는 눈송이들이 마치 하얀 목화솜 같다. 


12:15. 제1연화봉(1394m) 이정표를 지나 눈 쌓인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섰다가 다시 나무계단을 오르려니 전망 좋다는

 탄성 대신 "아이고 나 죽겠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바람이 가려진 곳에 서서 잠시 쉬며 뜨거운 물과 단 것으로 충전한다.


12:40. 높은 곳에 오르니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비로봉이 훨씬 앞으로 다가와 서 있다. 폐타이어를 덧대 만든

나무계단을 내려섰다 다시 오르막. 그냥 오르기도 힘든데 바람과 싸우며 오르려니 힘이 배로 든다.

비로봉까지 1.5km 남았다는 팻말 기둥에 붙은 예쁜 눈꽃이 바람의 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리얼하다.

정상은 빤히 보이는데 오르고 또 올라도 멀기만 하다.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선 젊은 사람들의 장난기가 발동하며 한 사람이 눈에 뒹군다. 바람이 한 차례 세게 부니

쌓인 눈과 가지 끝의 눈이 휘날리며 잠시 시야를 가린다. 관목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흰 눈과 대조되며 한결 파랗다.


13:15. 천동 삼거리. 천동 동굴이 있고 소백산 북부관리 사무소가 있는 천동리로 내려 갈 수 있는 곳이다.

잠시 더 올라 외관이 까만 주목 관리소 건물을 지나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천연 기념물인 주목은 바람이 세차 

얼굴을 돌려 바라볼 수가 없고, 오르막에 서있는 기둥과 밧줄에 옆으로 날듯 얼어 붙은 눈(雪)이 볼만하다. 


13:25. 비로봉(1439.5m) 정상. 여러 방향에서 올라온 다른 팀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바람이 없으면 서로 정상 표지석 잡고 기념사진 찍기 바쁠 텐데 누구하나 머무는 사람 없이 모두 제 갈 길로 도망가기 바쁘다.

아늑한 곳이 없으니 여유를 부릴 수 도 없어 국망봉을 향해 다시 발길을 옮긴다.


북쪽으로 향하는 완만한 내리막 능선의 나무계단. 기둥의 지름 보다 더 긴 눈꽃이 어두운 색 기둥 한쪽 방향으로 일제히

붙어 있어 삭막한 벌판에서 보는 이를 잠시 즐겁게 해 준다. 바람이 정면에서 도전해 오므로 바람을 피해 오로지 아래만

쳐다보며 걷느라 먼 곳은 볼 수도 없다. 길을 중심으로 왼쪽은 풀 들이 누워있고 오른쪽은 눈이 쌓여 대조를 이룬다.

바람에 몸이 휘청거려 감히 바람에 맞설 수가 없어 능선을 지나 반대편 봉우리에서 돌아서서 사진을 찍는다.


13:45. 국망봉을 향해 내려가는 갈림길. 비로봉에서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는데 모두들 어디론가 가 버리고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없어 오로지 혼자다. 철 계단인지 나무 계단인지 눈이 쌓여 알 수는 없고 난간이 철로 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고 바람이 막혀 

눈이 많이 쌓인 곳으로 발자국을 따라 내려서니 저 멀리 앞에서 노란 옷의 후미대장이 바람을 피하며 기다리고 있다.


"아이쿠, 엄마야~" 가뜩이나 성큼 성큼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보폭을 넓게 딛느라 힘든데

앞에서 기다려주는 대장에게 미안해 빠른 걸음으로 건너다 한쪽다리가 무릎 위까지 빠지며 균형을 잃으니

 몸이 뒤틀리고 종아리와 넓적다리에 쥐가 나듯이 뻐근하게 마비되며 갑자기 아파오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눈을 간신히 헤치고 나와 다시 여유 있는 걸음으로 걷는다.

늦게 시작한 산행을 내 삶의 일부라 생각 해왔는데 왜 이런 힘든 고행을 택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사이에 한 살을 더 먹어 더 힘든 것일까?


14:00. 커다란 바위아래 바람이 자는 곳에서 뜨거운 물과 떡 간식을 먹고 다시 정신없이 걷는다.

비로봉 근처에선 비교적 육산인 등산로를 따라 왔는데 이곳은 능선에 제법 바위가 보인다.

키가 큰 나무숲을 지나고 키가 작은 진달래 능선도 지나 다시 나무계단을 올라 뒤 돌아 보니

비로봉부터 오르내리며 지나온 능선이 파노라마로 한 눈에 보인다.


14:50. 국망봉(1420.8m) 도착. 검은색의 암봉으로 되어있고 표지석 옆으로 국망봉에 대한 전설이

쓰여진 안내판이 서 있다. 두 번째 와보는 곳인데 왜 꼭 바람 부는 추울 때만 오게 되는지. 국망봉에서  200m 쯤 걸으니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28구간의 종주 길은 원래 고치령까지이나 시간과 거리가 너무 길어

오늘은 여기서 대간 길과 작별하고 어의곡리를 향해 왼쪽으로 내려딛는다.


15:00. 잡목 숲의 비탈면엔 발자국 조차 남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쌓인 눈이 깨끗한데 우리 팀의 발자국만 있어

다져지질 않아 가파르고 미끄러워 젊은 아낙들은 엉덩이로 썰매 타며 좋다고 떠든다.

엉덩이 뼈 다칠까봐 쫓아 할 수는 없고 간신히 쪼그리고 앉아 봅슬레이 타듯 좁은 눈길을 내려선다.


산죽 앞이 눈에 묻힌 길을 지나고 계곡물이 얼어 빙판을 이룬 곳도 지나 한 동안을 내려서니 무슨 동물의 발자국인지

지루한 하산 길에 재미를 준다.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은 여러 종류인데 크기로 봐서 작은 동물 같다.


16:00. 해발 700m의 표지목. 1421m의 국망봉에서 한 시간 동안에 반 높이 만큼 내려섰는데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뒤에 처져 혼자 걷는 발 길이 지루하다. 여전히 동물들의 발자국은 이어지고 사진 찍느라 시간도 지체된다. 

해발 620, 540, 500, 460m 까지 내려서니 쭉쭉 뻗은 낙엽송 사이로 햇살 비치는 건너편의 밝은 산꼭대기가 보인다.


산 속에서 나와 눈 쌓인 넓은 도로를 걷고 다리의 난간 위 삼국시대 복장을 한 조각상을 얹은 새밭교를 건너

17:00. 어의곡리 주차장 도착. (죽령~국망봉) 14.6Km + (국망봉~ 어의곡리) 4.9Km = 19.5Km, 오늘 걸은 거리이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7시간 30분.

늦은 점심이지만 먹어야 겠는데 너무 힘들었는지 밥이 안 먹혀 그대로 차에 오른다.

힘은 들었지만 오늘도 해 냈다는 만족감에 뿌듯하다.


2006.1.3.(火). 병술년 새해 첫 산행. 백두대간 종주 28-1구간을 지나다.

(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어의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