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오 규원 外 - 絶 命 時

opal* 2007. 7. 8. 11:57

 

▲ <강화도 전등사 경내에서>

 

 

빈  집

                      기 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잘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사랑 빈 집에 갇혔네

 

 

달개비 꽃

                           김 춘수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알리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울지 않는 저 콩새는 알리라
누가 보냈을까
한 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눈 뜨는

 

 

                           이 형기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저 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 


 

화려한 오독

                                임 영조


장마 걷힌 칠월 땡볕에
지렁이가 슬슬 세상을 잰다 


시멘트 길을 온몸으로 긴 자국
행서도 아니고 예서도 아닌
초서체로 갈겨쓴 일대기같다


한 평생 초야에 숨어 굴린 화두를
최후로 남긴 한 행 절명시 같다.

 

 

絶命詩 : 시인들이 세상을 떠나기전 남긴 시

절명시는 원래 조선시대 선비들이

죽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시를 의미 했다.

 

단종 복위를 꿈꾸다

형장이슬로 사라진

성삼문의 절명시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북소리 둥둥둥

목숨을 재촉하니

해도 서산에 고개를 기울구나

내가는 황천 길

주막 한 곳 없다 하니

오늘 밤은 뉘집에서 쉬어 갈꼬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券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새와 짐승들 슬피울고 바다 또한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구나

가을의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을 되새기니

어렵구나,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가

 

黃玹

1855년 (철종6)~1910. 조선말기의 순국지사, 시인, 문장가,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본관은 장수(長水).  전남 광양출신, 시묵(時默)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청년시절에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에 와서 문명이 높던 강위(姜瑋)·이건창(李建昌)·김택영(金澤榮) 등과

깊이 교유하였다.1883년(고종 20) 보거과(保擧科)에 응시했을 때 그가 초시 초장에서 첫째로 뽑혔으나

시험관이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둘째로 내려 놓았다.

조정의 부패를 절감한 그는 회시(會試)·전시(殿試)에 응시하지 않고 관계에 뜻을 잃고 귀향하였다.

1888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못해 생원회시(生員會試)에 응시해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당시 나라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은 뒤 청국의 적극적인 간섭정책 아래에서 수구파 정권의

부정부패가 극심했으므로 부패한 관료계와 결별을 선언, 다시 귀향하였다.

구례에서 작은 서재를 마련해 3,000여 권의 서책을 쌓아 놓고 독서와 함께 시문(詩文) 짓기와

역사 연구·경세학 공부에 열중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갑오경장, 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급박한 위기감을 느끼고,

후손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매천야록 梅泉野錄≫·≪오하기문 梧下記聞≫을 지어

경험하거나 견문한 바를 기록해 놓았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자 통분을 금하지 못하고,

당시 중국에 있는 김택영과 함께 국권회복운동을 하기 위해 망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통분해 절명시 4수를 남기고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매천집≫·≪매천시집≫·≪매천야록≫·≪오하기문≫·≪동비기략 東匪紀略≫ 등이 있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