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신 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후포에서)
산에 대하여
신경림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두물머리
신 경림
"조심조심 지뢰 사이를 지났지
긁히고 찢기면서 철조망도 넘었지
못다 운 넋들의 울음소리도 들었지
하얀 해골 덜 삭은 뼈에 대고
울면서 울면서 입맞춤도 하였지"
"내 몸에 밴 것은 눈물뿐이라네
쫓겨난 농투산이들 한숨뿐이라네
눈비 바람은 갈수록 맵차고
온 벌에 안개 더욱 짙어가지만
나는 보았네 땅 뚫고 솟는 빛살을
노래처럼 힘차고 굵은 빛살을"
"얼싸안아보자꾸나 어루만져보자꾸나
너는 북에서 나는 남에서
온갖 서러운 일 기막힌 짓 못된 꼴
다 겪으면서 예까지 흘러오지 않았느냐
내 살에 네 피를 섞고
네 뼈에 내 입김 불어넣으면
그 온갖 것 모두 빛이 되리니
춤추자꾸나 아침햇살에 몸 빛내면서"
(*.두물머리에서 만난 북한강과 남한강이 주고 받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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