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오 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슴입니까.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 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강변에서
오 세영
동트는 아침
강가에 서 보는 것은
밤새 그리움에 지쳐 떨다가
이 지상에 투신한 별 하나,
줍기 위함이지요.
그러나 강변엔
조약돌밖에 없었어요.
푸르른 한낮
강가에 서 보는 것은
가슴 깊이 차 오르는 밀물
잡을 길 없어
먼 바다에 나아가고 싶어서지요.
그러나 강변엔
삭고 있는 목선(木船)밖에 없었어요.
해 저문 저녁
강가에 서 보는 것은
바람결에 실려 와서
내 귓가에 가득히 맴도는 음성 하나,
아련히 내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강변엔
외로운 들꽃밖에 없었어요.
그런 때가 있었다
오 세영
그대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던 때가.
그대가 내게 손을 내밀든지 말든지,
나를 아는척 하든지 말든지
그저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따뜻한 때가.
함박꽃
오 세영
빛이 꿈꾸는 다이아몬드라면,
소리가 꿈꾸는 웃음이라면,
향기가 꿈꾸는 꽃이라면
그 빛과 향기와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마침내 이루는 보석도 있나니
광부(鑛夫)가 어두운 지층에서 원석(原石)을 찾듯
깊고 깊은 산속
녹음 짙은 골짜기를 헤매다 보면
아는 듯 모르는 듯
향기에 취해 그대 어딘가 이끌려갈지니
발을 멈추어 선 그곳에
오뉴월 내리는 함박눈처럼
아, 함빡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는 꽃,
빛과 소리와 향기가 어우러진
꽃들의 꽃이 거기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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