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김 지하
신록이 우렁차다
어디서 나팔 소리 울리나
나팔 소리 없고
신록이 우렁차다
어디서 피리 소리 들리나
피리 소리 없고
어젯밤 거친 꿈 속에서 돋아나
아침 나무에 싱그런
신록이 우렁차다
오듯이 봄은 가고 없고
우렁찬 나팔 소리만
애잔한 피리 소리만
아아 신록이 우렁차다
잎새 몇 닢 따서는
검은 나뭇등걸에 바치고
또 바치고
황톳길
김 지하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샆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 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메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든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 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一山詩帖 · 3
김 지하
외로울 땐
풀잎 하나도 정답다
하늘 가득 스모그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대지
아
참새 지저귀고
아직도 꽃이 피고
하늘엔
흰구름도 흐른다
아파트에 쭈그려 앉아
허공 한쪽 볼 수 있으니
내 삶
아직은
괜찮다
고마워
눈물난다.
花開
김 지 하
부연이 알매 보고
어서 오십시오 하거라
천지가 건곤더러
너는 가라 말아라
아침에 해 돋고
저녁에 달 돋는다
내 몸 안에 캄캄한 허공
새파란 별 뜨듯
붉은 꽃봉오리 살풋 열리듯
아아
'花開'
본명 김영일
1941 전남 목포 출생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9 <<시인>>에서 시 <황톳길>, <녹두꽃>, <들녘>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81 국제시인회의의 <위대한 시인상> 수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황토(黃土)> 한얼문고 1970
시집 <대설(大說)남(南)> 창작과비평사 1984
시집 <애린1> 실천문학사 1987
시집 <애린2> 실천문학사 1987
시집 <검은 산 하얀 방> 분도출판사 1987
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동광출판사 1988
시집 <나의 어머니> 자유문학사 1988
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동광출판사 1989
시집 <중심의 괴로움> 솔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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