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비
황 명걸
개개비
이름처럼 가벼운
꼬마 새
작은 몸집에
체온은 따스해
알을 품어 깐다
저 핏덩이 죽인 뻐꾸기 새끼를
피붙이로 잘못 알고
애지중지 키우고는
친어미에게 빼앗기고도
기른 정 고집할 줄 모르는
착한 심성
멍청이라 더
정이 가는
꼬마 새 개개비
너를 닮아
세상이 좀 너그러웠으면
개개비에게서 배운다
한국의 아이
황 명걸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
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남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
보채다 돌맹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야
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
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
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
어미는 눈물과 한숨을
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
벼 몇 섬의 빚과 함께 남겼단다
뼈골이 부숴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야
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
누더기옷의 아이야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
사내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
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
보다 더 뼈골이 부숴지게 일을 해서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
일가친척 하나 없는 아이야
혈혈단신의 아이야
너무 외롭다고 해서
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올 줄 알고
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
맑은 눈빛의 아이야
빛나는 눈빛의 아이야
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고운 국수발 맑은 육수
갖은 고명에
배도 한 조각 떴겠다
꿩 완자도 한 알 얹혔으니,
눈치가 촉새 같은
계집이라고 곁에 있어
조금 초를 쳐 주면
그 냉면 얼마나 맛좋을까.
얼마나 잘 될까.
날로 헐벗어 가던 가난
사사건건 틀어져만 가던 일
난마처럼 뒤얽히던 생각
이런 불행한 사태들이
하나 둘 바로 풀리는 듯할 때,
감초아줌마같이 원만한
여편네라도 곁에 있어
좀 거들어만 준다면
그것들이 얼마나 잘 될까.
한데 얼마나 힘드냐.
어느 모임 어느 직장 어느 동네나
애써 성사시킨 일 그르치게 하고
겨우 차지한 자리 가로채고
멀쩡한 사람 헐뜯어 내리는
장화홍련의 계모년같이 고약한 심보의
초치는 놈 있으니,
게다가 제 어미 장단에 춤추는
장쇠녀석 같은 놈 있으니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드냐.
초 치지 마라.
하긴 봉이 김선달이
쉰 죽에 초 쳐 팔아먹었다지만,
발끈한 청년이 변심한 계집의 얼굴에
초산 뿌려 앙갚음했다지만,
좋은 건 좋은 거고 초는 촌데
근량깨나 나가는 불알 찬 친구들이여,
남 망치고 저 망치는 초일랑
아예 치지 마라.
1935년 평양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62년 『자유문학』에 시 「이 봄의 미아(迷兒)」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옴.
1963년 『현실』지 동인으로 참여.
1964년 동아일보사 입사, 기자로 근무하다 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해직됨.
1976년 첫시집 『한국의 아이』(창작과비평사), 1996년 『내 마음의 솔밭』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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