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황 동규 - 시월, 가을엔.

opal* 2009. 10. 4. 01:32

 

시월

                                            황 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이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가을엔
                                         황 동규

가을엔 이별의 앞차를 타리.
길 뚫려 미리 터미널에 나가
시간 채 안 찬 차 타듯.
길 양편에서 손짓하는 억새들을 지나
그 뒤를 멋대로 색칠한 단풍들을 지나
낯익은 도시의 바뀐 모습에 한눈 팔다가
광장 한구석 조그맣고 환한 과일 좌판 위에
낙엽 한 장으로, 혈맥(血脈) 한 장으로,
내리듯
과일에 닿기 직전
바람을 놓치고 한번 맴돌며
왜 이곳에 왔나를 환히 잊듯
그렇게 살다 가리.

떠남의 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