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김 용택 - 환장, 들국, 저 들에 저 들국 다 져불것소.

opal* 2009. 10. 17. 21:00

 

환장

 

                                                                  김 용택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앉아 놀다가 한줄기 바람에 날려 흐르는 물에 떨어져

멀리멀리 흘러가버리든가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오래오래 앉아 놀다가 산에 잎 다 지고 나면

늦가을 햇살 받아 바삭바 삭 바스라지든가 

 

그도 저도 아니면
  우리 둘이 똑같이 물들어
  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버리든가

 

 

들국

 

                                                             김 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저 들에 저 들국 다 져불것소

 

                                                           김 용택

 

날이면 날마다
내 맘은
그대 오실 저 들길에 가
서 있었습니다
이 꽃이 피면 오실랑가
저 꽃이 피면 오실랑가
꽃 피고 지고
저 들길에 해가 뜨고
저 들길에서 해가 졌지요

그대 어느 산그늘에 붙잡힌
풀꽃같이 서 있는지
내 몸에 산그늘 내리면
당신이 더 그리운 줄을
당신은 아실랑가요

대체 무슨 일이다요
저 꽃들 다 져불면 오실라요
찬바람 불어오고
강물 소리 시려오면
내 맘 어디 가 서 있으라고
이리 어둡도록 안 온다요
나 혼자 어쩌라고
그대 없이 나 혼자 어쩌라고
저 들에 저 들국 지들끼리 다 져불것소.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