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조 병화 - 구월, 늘 혹은 때때로, 개구리의 명상

opal* 2009. 9. 2. 22:13

 

 

 

구월 
                     조 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 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 지는 법이다
또한 그 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운 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받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이치 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늘, 혹은 때때로 
                                 조 병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나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개구리의 명상 16
                             조 병화

사랑하며 배우며 가르치며 
비바람 심한 이 거센 세월을 서로

잠시 비켜서 쉬어가기 위하여 

의로움, 즐거움, 그리움, 서로 주고 받으며 살아가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서로를 갖고 싶을 정도로 
사무치게 짙어지면, 서로 괴로워지니 
서로 갖고 싶은 마음 애달프게 쓸쓸해지면 
마음 아파도 그저 빙그레 웃으시오 
사랑은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 살아가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이 외로워지면 질투하는 마음으로 어두워지고 
질투하는 마음이 고이거든 
마음 공허하더라도 숨어서 혼자 울으시오 
사랑은 질투가 아니기 때문에  


아, 살아가면서 서로가 한없이 사랑이 뜨거워지면 
서로 소유하고 싶은마음, 질투하는 마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잠시도 견디기 어려운 마음, 
어찌 생기지 아니하리오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고
 한없이 곱고 뜨거운 그리움이어서 
그리운 만큼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그저 그만큼 그리움으로 숨어서 우는 일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