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8(금)
▷ 이태리 고딕 건축의 정수인 『두오모 성당 』과 『아케이드』
![](http://dicimg.naver.com/100/sub/nation/bmap_128457_city.jpg)
이태리 지도.
밀라노는 북부 이태리 심장부에 해당되며 인구 166만, 로마에 이어 이태리 제 2의 도시이다.
이태리 경제의 중심으로 국내 뿐 아니라 유럽 경제시장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가장 현대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는 큰도시다.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적 건물이 수없이 남아있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 밀라노 대 성당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두오모 광장과 접해 있는 흰 대리석의 대성당, 두오모 (duomo).
두오모는 영어의 돔(dome)과 같으며 라틴어(語)의 도무스(domus)를 어원(語源)으로 한다. 영어의 돔은 반구형(半球形)의 둥근 지붕,
둥근 천장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대하여 이탈리아어의 두오모와 독일어의 돔은 대성당(大聖堂:cathédrale)을 말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말하는데, 큰 도시에는 모두 두오모 성당이 있으며, 그 중 밀라노와 피렌체의 성당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인데, 과거 도시계획자들은
한 도시를 건설할 때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두오모를 배치한 후 주변에 시민광장, 관청, 공공시설, 상가 등을 배치 하였다.
이 성당은 1386년인 14세기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지휘에 착공되었고 450년 후 19세기 나폴레옹 왕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성당 길이 157m, 폭 92m, 높이 108.5m로 바티칸의 산 피에르 사원에 이어 세계 두 번째 큰 성당으로 전형적인 고딕양식 이다.
135개의 첨탑과 성모마리아와 성 암브로조의 일화를 기록한 청동문 등과 탑 하나하나 마다 3159개나 되는 성자와 사도들의 조각군이 있다.
내부에는 15세기의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으며, 성당 보물실에서는 4-12세기 사이의 각종 보석들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 위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오를수 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올라가 볼 수가 없었다.
그늘 부분을 촬영해 색감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크기에 놀라고, 섬세함에 놀라고...
핑크색과 녹색의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더 아름답게 빛난다.
위 사진 두 장은 한 컷에 담을 수 없어 위 아래 두 장으로 찍어 보았다.
건물에 석양이 비친 모습이라 위 사진들과 색이 다르다.
탑 꼭대기마다 인물상이 있다.
해는 이미 기울고.
갤러리아(Galleria) 아케이드가 두오모 광장 주위를 감싸고 있다.
3년에 걸쳐 1877년 완공된 아케이드는 유리로 장식된 높은 돔형의 천정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리석 문양 바닥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통로 양쪽은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 부티크, 기념품 판매점 등이 줄지어 있다.
아케이드 중앙 유리돔으로 된 천정.
십자로에는 4대륙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네 방향 대각선 각 모서리마다 꼭대기에 각기 다른 그림이 있고 이야깃거리가 있다.
한 쪽 면의 이 그림엔 노예로 일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이 등장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빠른 이야기를 메모하랴, 사진찍으랴... 이야기 내용을 잊었다. ㅎㅎㅎ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 아케이드 천장
십자로 통로로 되어 있어 어느 방향이나 밖으로 통할 수 있다.
문양 속의 SPQR은 로마 원로원과 시민을 뜻하는 라틴어 문구인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약자 이다.
로마 공화정과 로마 제국의 공식 명칭으로 이 문구는 현재 로마시의 공식 문장에도 들어있다.
위사진 가운데 그림은 로마의 건국설화의 늑대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물루스(Romulus)는 전설적인 로마의 건립자이며 초대 왕이다. 전설에 의하면 로물루스는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이네아스(Aeneas)의 손자라고 하기도 하며, 혹은 라티누스(Latinus)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로물루스에 관한 전설은 로마의 고역사가 파비우스 픽토르(Fabius Pictor)의 설에 의한 것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탄생설화
파비우스의 설에 의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후손은 로마의 남동쪽에 위치한 알바 롱가(Alba longa)라는 지역에 정착하여 살았다.
고대 도시국가 시절 16대 왕 누미토르(Numitor)와 동생 아물리우스(Amulius) 형제는 씨족의 상속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동생인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의 장자권을 무시하고 무력을 써서 씨족의 우두머리가 된 후, 형의 아들을 죽이고,
형의 외딸 레아 실비아(Rhea Sivia, 혹은 일리아 Ilia)를 베스타 신전의 불을 지키는 신녀로 동정녀로 결혼을 못하게 하였다.
누미토르의 가계를 단절시키고자하는 음모에서였다.그런데 그녀가 물을 긷기 위해 수풀에 나갔을 때,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神)인
마르스가 인간인 레아 실비아를 범했는데, 실비아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으며, 쌍둥이 아들,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았다.
가축을 치는 시종 파우스툴루스는 갓난아이들을 제거하라는 아물리우스의 명에 따라 쌍동이를 바구니에 담아 티베르 강에 띄워 보냈다. 한편 비탄에 잠긴 실비아는 티베르강에 투신자살 하였다. 아이들이 실린 바구니는 얼마 후 강가로 떠밀려 가다 멈추었다. 때마침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늑대 어미는 칭얼거리는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으며, 딱따구리가 다른 먹을 것을 날아 주었다고 한다 (늑대와 딱따구리는 마르스신의 상징동물).
다른 전설에 의하면 파우스툴루스는 그의 처 라렌티아와 함께 아물리우스의 명을 거역하고 몰래 자신의 집에서 쌍동이를 길렀다고도 하고
또 다른 설은 늑대의 젖 먹던 아기들을 양치기가 길렀다고도 한다.
그후 자신들의 근본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할아버지인 누미토르를 왕으로 복귀시킨 후, 새로운 도시 로마의 건설에 착수하였다. 형인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에 나라를 세우기를 주장하고, 동생인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을 주장하여 서로 싸우던 중 레무스가 살해되고 만다.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이 도시가 고대 로마이다.
현재 콘셀바토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암 늑대의 청동 상은 라틴 문화의 상징으로 되어 있으나 B.C 5세기에 에트루리아 시대의 작품이며
로마의 건국 신화에 따라 조형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케이드 건물 안 모자이크로 문양을 넣은 바닥은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배여 있다.
이 황소 문양은 옛 토리노 도시국가의 문양 이다. 옛날 밀라노와 토리노는 서로 이웃이면서도 사이가 안 좋았다.
밀라노가 더 부강한 도시국가임에도 토리노를 정복하지 못했다. 밀라노는 사사건건 대들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토리노가 못마땅했다.
"이 황소의 거시기를 발뒷굼치로 밟고 한바퀴 돌면 행운이 오고. 밀라노를 다시 찾게 된다"나 어쩐다나,
관광객들은 한 번씩 밟고 싶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토리노를 미워하며 토리노인들을 혼내주는 밀라노의 통쾌한 해학이 숨어 있다.
스포르체스코 스폴리짜 가문의 문양임과 동시에 고대 밀라노 국기인 붉은 십자가 문양이다.
이 스폴리짜가의 문양은 현재 이태리의 자동차 '알파로메오'의 문양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로마 역사의 시작
이탈리아 반도에 제일 먼저 정착한 민족은 에트루리아 족으로 이들은 멀리 소아시아 즉 지금의 중동 지방에서 이주해 온 민족이다.
하지만 거의 동시대에 들어온 라틴 족이 기원전 509년에 에트루리아 민족을 몰아내고 독립을 한 것이 로마 역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로마는 그 문명이 오리엔트 문명에서 기원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알파벳을 사용한 것이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용하던 아치형 건축 양식이 이 시대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화정 시대 기원전 510년에서 -기원전 29년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가 이탈리아반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강력한 도시 국가 카르타고를 평정하고
스페인, 일리리아, 그리스, 소아시아를 정복, 시저에 의해 갈리아 지방도 정복함으로서 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시대다.
바로 그 유명한 한니발 장군과 스키피오 장군도 이 때 활약하였다.
제정시대 기원전 29년부터 기원 후 476년.
로마 제국 최대의 번성기로서 브리타니아, 후리시아, 타치아, 마우리타니아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한 시기다.
제정 시대 말기에는 아라릭의 비시모티, 젠세리트의 반달족, 게르만족의 리치메르에 의하여 로마가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며
종국에는 서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시대다. 이 시대의 최대 번성 기에는 로마 시내의 인구가 150만에 육박할 만큼 초강대국의 면모를 과시해
네로 황제의 기독교 탄압 이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하여 크리스트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되는 때다.
중세 시대477-1400년대.
중세 시대란 그 시작을 학자에 따라서 서 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혹은,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1453을 기준으로 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서 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을 그 기준 점으로 잡는다.
중세 시대란 1770년경에 이르러 역사 학자들이 붙인 말로서 오늘날처럼 인간의 지혜와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고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문화가 뛰어나지도 못했던 오직 믿음에만 의지했던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칭한다.
이 시대의 중요 사건을 살펴보면, 493년부터 553년까지 고트 족이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하였으며
이 시기에 로마 종교는 그 영향력을 확대하여 나갔다.
728년에는 롬바르드왕 류트프란드가 순교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를 위하여 수트리의 성을 기증하였고 이로서 교황들의 세속권이 시작되었다.
800년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에 의하여 샤르마뉴가 서유럽 대부분을 지배하였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선포되어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1309년에는 아비뇽 유수라는 사건이 벌어져 프랑스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이전하고 이로서 로마의 중요성이 격감되어 급격히 쇠퇴하여 졌다
르네상스 시대 15,16,17세기
르네상스란 원래 '재생'을 뜻하며 구체적으로 14세기부터 시작된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을 뜻한다.
사람들은 십자군 운동 이후에 봉건 사회가 동요되고 교회의 힘이 약해짐에 따라 중세의 크리스트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찾게 되었다.
즉 장원과 교회로 묶여진 획일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인간관과 자연관을 이루어 냈는데 이것이 서양 근대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로 부라만데(1444~1514),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가 있다.
근대의 이탈리아
1870년 로마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로 선포되고 교황청 세속 권 시대가 막을 내렸으며 무솔리니가 이끌던 파시스트 정권은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에우르 신도시를 로마 제국 풍의 도시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1차 대전 때에는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었으나 2차 대전 당시에는 독일과 동맹하여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패전국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2차 대전 후에 피아트, 람보기니 자동차 공업을 선두로 패션 산업과 관광으로 경제적 재건을 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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