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동유럽 여행 첫날, 인천-푸랑크푸르트-아우스브르그

opal* 2012. 5. 29. 22:00

 

(5월 29일 화요일)

인천 - 푸랑크푸르트-아우스브르그

 

열흘을 넘게 집을 비웠던 네팔 여행 끝낸지 두 달 반만에 또 짐 보따리를 챙겨 8박 9일 일정으로 집을 나선다.  

매월 회비를 모아 작년 초여름(2011.6)에 떠나기로했던 동유럽 여행, 막내아들 혼인 날이 잡히는 바람에 늦춰졌다.

그해 9월로 연기 했다가 한 사람이 사정이 생겨 Cancel되는 바람에 해를 넘기고, 동행인도 멤버가 바뀌었다.

서유럽 여행 때처럼 이번에도 두 동생이 함께하고, 친구가 지인 4명을 데리고 와 일행이 모두 11명이 되었다.

오지로 트레킹 다닐땐 힘들고 고생스러워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관광을 좀 편하게 하고 싶어 제안 했다가...또 졌다.ㅋㅋ

 

인천공항 3층에서 국내 인솔자 미팅과 Boarding Pass. 두 여행사의 여행객들이 함께 떠나기로 되어 있어 예정보다 일찍 만났다.

 

거리가 가까운 본인은 아침식사를 하고 나왔으나 공항에서 집이 먼 친구들은 식사를 거르고나와 짐 부친 후 아침식사를 나눈다.

1인당 \17,000 내에서 6인분까지 무료 혜택?을 보는 카드를 가진 친구가 있어 희망자에 한해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

 

출발은 12:30,이나 오후 1시가 되어 이륙, 유리창 청소를 안했는지 지저분하다.  서유럽 갈 때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바로 저녁 시간에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탈 수 있었는데 오늘은 프로그램이 없는 걸 보면 도착하는 걸로 끝인가 보다.   

 

보통 13시간 정도를 비행기 안에 갇혀 있어야 하므로 영화도 보고, 가끔 운항 정보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기류가 안좋은 곳을 지날 때는 비행기가 흔들리며 모니터 화면도 정지상태로 방송 안내를 한다. 

 

두 끼니의 식사 메뉴로 양식과 한식 중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기내에서 점심식사로 제공되는 양식과 불고기와 야채 그리고 미역국까지 제공되는 한식.

 

서해를 건너 중국 상공을 날고 있는 중, 움직이질 않고 앉아 있으니 칼로리 소비가 안되어 간식으로 나온 피자도 식욕이 없다.  

 

마가렛 대처 수상을 영화한 '철의 여인'감상.  남자들만의 세계에 도전한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

'철의 여인'은 979년부터 90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의 별명이다

스물 여섯의 야심만만한 옥스포드 졸업생 ‘마가렛’은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지방 의회 의원 선거에 나가지만 낙선하고 만다.

실망한 그녀를 눈 여겨 본 사업가 ‘데니스’는 특유의 유머와 따뜻함으로 그녀를 사로잡으며 평생의 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남편의 전폭적 지지 속에 ‘마가렛’은 꿈에 그리던 의회 입성에 성공하고,

곧이어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된다. 연거푸 3선에 성공,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막대한 권력과 세계적 정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떨치던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정책을 당당히 추진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이들과의 격렬한 대치가 이어지고 각료들은 11년간 지켜온 총리직에서 물러나라고 종용하기에 이른다.

 

 “찻잔이나 닦는 삶을 살 수 없다”던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찻잔을 닦게 되는, 이 사람의 빛나던 시절이 아니라,

늙은 후 젊은 날들을 추억하는 방식으로 만든 영화이다. 

 

도착지(푸랑크푸르트)까지 3시간 반정도 남았다고 표시되어  나타난다. 긴 시간동안 눈 한 번 안붙이고 앉아있으니 바보 같기도 하다.  

 

음료수 주문하여 마시고,  이채널 저 채널 돌리며 시간 보내니 아시아주 통과하고 유럽주 입성.

 

창가 자리를 떠나 친구가 있는 옆자리에서 이른 저녁식사. 자리 주인인 친구는 편히 누워 간다고 앞좌석 빈자리로 이동.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눈부시고 뜨거워 창을 닫고 있는데 모니터에 표시되는 바깥 온도는 -52℃ 란다.

 

가끔씩 창 가리개를 열고 내다보면 푸른 창공이 보이기도하고 먹구름 속을 통과하기도 한다. 

 

독일 프랑크프르트 지역 상공 비행 중. 비행기 밖의 유리에 햇살이 비치니 지저분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독일 중서부 지역 라인강 지류인 마인강이 보이는 프랑크푸르트 상공.

예전에 박 대통령이 독일 방문 후 귀국하여 우리나라도 치산 치수를 강조했다는 말이 독일 상공을 날다보면 실감할 수 있다. 

 

출발 12시간만에 프랑크푸르트 도착. 우리시간으론 자정이 지났는데 현지 시간으론 오후 4시 35분, 시차는 7시간, 

전원을 차단시켰던 전화기를 켜니 자동으로 로밍되어 섬머타임을 적용하겠느냐 묻는다. 적용시간 1시간에 체크하고 Yes. 

 

공항 건물 밖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전용 버스에  탑승하여 프랑크푸르트 제2 여객 터미날로.

 

우리는 아시아나 항공편을 이용하고, 대한항공편을 타고온 여행객을 2 터미날에서 버스에 태운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나며

우리시간으로 다음날(5월 30일) 새벽 1시 15분인 손목시계를 전날(5월 29일) 오후 6시 15분, 7시간 뒤로 돌려 놓는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독일 바이에른 주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로 이동하며 인솔자의 설명이 시작된다.

berg나 burg가 들어간 도시 이름은 예전에 성(城)이 있었다는 뜻으로 '부르조아'의 원조어 라고 하고, 

독일이 Germant의 약자인 G를 사용하지않고, Deutschland의 D字를 사용하는 것은 

G =게르만민족 = 야만인이라는 뜻이 있어  D字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는 독일 중서부  헤센 주에 있는 도시, (독일 동부에 같은 이름의 도시  프랑크 푸르트가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공항은 라인 강의 지류인 마인 강 연안에 위치해 있어 암마인 국제공항(Frankfurt am Main))으로 불린다.

 

헤센 주 최대의 도시이며,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다음으로 독일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독일의 행정수도는 베를린이지만, 경제적 수도는 이 도시라 할 수 있는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의 경제 중심지이다.

유럽 중앙 은행과 프랑크푸르트 증권 거래소도 위치하고 있어, 영국런던과 함께 유럽의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나치정권이 만든 독일 최초의 고속도로노선 5번과 3번 아우토반(독일 고속도로)이 만나는 도로교통의 요충지로 자동차 및 화물수송차량이 많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Frankfurt Hauptbahnhof)은 쾰른의 중앙역과 함께 유럽 철도 교통의 대중심지이다.

독일의 항공회사 루프트한자(Lufthansa)의 거점도시이기도하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은 경제의 중심지로 번창하는 현대적인 대도시이지만, 상당히 유서깊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12세기에 이미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으며, 18세기에는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이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이 시기에 이 도시에서 태어나서 활동하여, 이 도시는 괴테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인솔자는 독일 역사를 설명하기위해 그리스 신화부터 꺼내기 시작한다. 중세의 독일 역사를 설명하는 인솔자의 이야기에 귀를 맡기고,

눈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전원 풍경 감상,(인솔자의 얘기 내용이 머리속에서 정리 되지않아 백과사전에서 간단히 인용한다.)

 

황금사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과이다.

 

파리스(Pari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자,.

(Trory, Troy-소아시아 반도의 서쪽, 다르다넬스 해협에 가까운 히사를리크 언덕에 있던 고대 도시)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인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도록 심판하였으며,

그녀의 도움을 받아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하였다.

(Aphrodite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바다와 항해를 관장하는 신으로 널리 숭배되었다.)

 

에리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싸움의 여신,

손에 가진 황금의 사과를 던져서 싸움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던져 트로이 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영웅 파리스가 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를 놓고 심판을 내렸다는 에피소드. 

 파리스는 알렉산드로스라고도 하며 트로이의 프리아모스왕의 아들이다.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인 헤카베는 횃불이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꿈을 꾸었고 이것은 트로이의 멸망을 의미하는 불길한 전조라 하여

이데산()에 버려진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파리스라는 이름으로 양치기 목동들에 의해 키워진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을 때 여러 신들이 잔치에 초대되었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제외되었다.

노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여 있는 황금 사과를 연회석에 던졌는데 아테나(로마신화에서 미네르바), 헤라(주노),

아프로디테(비너스) 세 여신이 이 사과를 두고 다투자 제우스는 그 심판을 파리스에게 맡겼다.

세 여신은 이데산으로 달려가 아테나는 지혜를, 헤라는 세계의 주권을, 아프로디테는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약속하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택하였고, 이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스타르타의 헬레네가 그에게 주어지게 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리고 왔으나 그녀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 원정을 하게 되어 마침내 트로이전쟁이 시작되었다.

 

트로이戰爭(Trojan war)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전쟁.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 아테나가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주인이 되었다.

그 댓가로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과 신들이 얽혀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이 전쟁은

오디세우스의 계책으로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는 위장 전술을 폈는데,

여기에 속아 넘어간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하였다.

새벽이 되어 목마 안에 숨어 있던 오디세우스 등이 빠져 나와 성문을 열어 주었고 그리스군이 쳐들어와 트로이성은 함락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하여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비행기에서도 12시간을 넘게 앉아 왔는데 버스로 또 4시간 반을 달리며 인솔자에게 역사 얘기를 듣는다.  

 

신성로마제국 때의 독일

콘라트 1세 사망 후 하인리히 1세가 즉위하여 작센왕조가 일어났고, 936년 하인리히의 아들 오토 1세가 모든 부족제후의 동의를 얻어

 왕위에 올랐다. 콘라트 1세와 오토 1세의 즉위를 계기로 독일의 ‘선거후제()’ 및 ‘혈통권에 의한 선거’ 등

왕위계승의 전통이 공식화되었다. 오토 1세는 제후들에 의한 국내분립을 극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교회와 왕권을 결합해서 교회를 왕권의 지주로 삼는 제국교회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교회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로마교황과의 제휴가 필요했기 때문에 교황의 요청에 의한 원정을 포함하여

2차에 걸친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했다. 그리하여 오토 1세는 962년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로 대관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성 로마 제국’의 탄생으로, 그후 13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황제시대’로 불린 독일 민족 우위의 황금시대가 지속되었다. 그후 이탈리아와의 결합,

로마의 지배로 구현되는 ‘황제정책’은 제국교회정책과 더불어 역대 독일국왕에 의해 계승되어 독일왕조의 전통정책이 되었다.

 

콘라트 1세(Konrad I, ?~918.12.23)독일 국왕(재위 911∼918).

마자르인·노르만족 등의 침공으로 고통을 받았고, 여러 부족공의 독립화 경향을 억제하지 못하는 등 왕권이 서지 못하였다

프랑켄대공으로 있다가 911년 동프랑크의 루트비히 4세가 사망하여 카롤링거왕조가 단절된 후에 국왕으로 옹립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마자르인, 노르만족, 슬라브족의 침공으로 고통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작센대공 하인리히를 비롯한

여러 부족공()의 독립화 경향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겨우 교회세력만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것마저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여

왕권이 서지 못하였다. 남자 후계자가 없어, 죽을 때에는 그의 대립자인 하인리히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하인리히 1세(Heinrich I, 876~936.7.2), 중세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국왕(재위 919∼936),

작센왕조의 개조(開祖). 당시 독일 왕권이 약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여 국왕으로서 절도 있는 태도를 지켰으며,

자기 본령(本領)인 작센의 발전에 힘써 지방제후들의 호감을 사 치세(治世)가 평온하였다.

 동방의 이민족인 슬라브·헝가리인, 북방의 데인인(人)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슬라브족(Slavs族)

인도유럽어족(語族)의 슬라브어파(語派)에 속하는 민족의 총칭.  
 현재 동유럽과 북아시아의 주된 주민으로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의 기간민족이다.

동유럽으로의 확산시기에 슬라브민족과 그 언어의 분화가 진행되었으나 언어는 근대에도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슬라브족은 각기 봉건국가를 세우고 흥망을 되풀이하였으나 서슬라브족은 유럽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남슬라브족은 투르크인에게 정복되었다. 단지 동슬라브족만은 9세기 키예프공국을 세워 외적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국토를 유지하면서

중앙집권적인 러시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18∼19세기 슬라브 제민족의 민족 해방운동이 일어났고,

특히 남슬라브족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쇠퇴를 계기로 독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로 서슬라브족이나 남슬라브족은 몇 개의 독립국가를 이루었고,

동슬라브족은 혁명을 통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창건하였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슬라브계 민족의 반()나치스 운동이 일어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등을 비롯하여

많은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었다. 일반적으로 남슬라브족은 남유럽형, 동슬라브족과 서슬라브족은 북유럽형과 유사하다.

전통적으로 호밀 ·보리 ·밀을 재배하고 소 ·말 ·양 등을 사육한다.

종교는 동슬라브족과 남슬라브족 대부분이 그리스도교의 일파인 동방정교회이고,

서슬라브족이 로마가톨릭교회이지만 남슬라브족의 일부는 이슬람교도이다.

9세기 그리스도교가 전파됨과 동시에 키릴문자가 전해져 현재 폴란드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슬라브족이 사용하고 있다

 

 

오토 1세 (Otto I, 912.11.23~973.5.7) 독일 국왕(재위 936∼973)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재위 962∼973).

주교 ·대수도원장을 왕권의 정치적 지주로 삼고 교회령을 물질적 토대로 하는 제국교회정책을 확립하였다.

이탈리아 원정으로 독일 왕권을 초독일적인 황제권으로 높였으며 문학 ·예술의 융성을 가져왔다

 

오토대제()라고도 불린다. 부왕 하인리히 1세의 유업을 이어받아 독일의 국가통일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처음에 부족 대공들의 분립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왕족을 대공과 왕령백()으로 임명했으나,

그들이 왕의 아들 루돌프를 선두로 부족 세력과 손을 잡고 반항하였으므로(루돌프의 난, 953∼954), 그 정책은 좌절되었다.

그러자 초부족적인 교회 세력과의 동맹을 시도, 주교 ·대수도원장을 왕권의 정치적 지주로 삼고,

그 교회령을 물질적 토대로 하는 방침(제국교회정책)을 확립하였다. 반왕권파()의 배후에는 서프랑크의 루이 4세가 있었는데,

오토는 3차의 원정에 이은 비제의 화약(940)과, 교황 사절의 출석을 얻어서 연 잉게르하임 주교구 회의(948)에 의하여,

이 방면에서의 정세를 안정시켰다.

 

951년, 오토는 제1차 이탈리아 원정을 시도하여, 이탈리아왕 로타르의 비아델하이트를 비()로 삼고,

이탈리아의 왕위를 얻은 뒤, 베렌가르 2세를 토벌, 이 기회에 황제 대관의 일로 교황 아가페투스 2세의 의향을 타진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그러나 여러 부족 대공에 대한 맹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또한 독일 교회에 대한 지배를 굳힐 필요에서, 교황 요한 12세의 파병 요청에 따라 다시 이탈리아로 출정, 962년에 교황으로부터 숙원의 제관()을 받았다(신성로마제국의 창시).

 교황의 윤허를 얻어 마그데부르크 대주교구를 설치하고(962), 동방 발전의 기초를 닦았고,

그의 교회 정책이나 이탈리아 ·비잔틴 관계를 계기로 문학 ·예술의 융성을 가져왔으며, 흔히 이를 오토의 문예부흥이라고 한다

963년 신성 로마제국이 된 1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게 망할 때까지 불리게 된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일행들처럼 차라리 잠이나 잤으면 편했을텐데 대강 메모하며 듣다보니... 머리만 아프고 ㅋㅋ

인솔자 또한 "소수이긴 하지만 안주무시고 듣는 분이 계셔서 설명을 멈출 수 없다"며... 어둡도록 이어간다.ㅎㅎㅎ누가 이기나 내기하듯...

 

내일 오스트리아로 가기 위해 독일 뭰헨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를 향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비행기 타고 서쪽으로 날아가며 벌었던 긴 낮시간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우리시간으로 낮 12시 탑승하여 오후 1시경에 출발, 다음날 새벽 3시가 넘었으니 낮의 길이가 엄청 길어지기도 했거니와

북반구에 해당되는 나라라 하지가 가까워 오니 늦도록 밝아 낮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전원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도로 주변엔 휴게실이 보이지 않아 오랫만에 차에서 내려 휴식을 취한다.

화장실 이용료는 70ct(1=100ct), 동전을 투입하면 50센트짜리 티켓이 나오고, 이 티켓은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50센트짜리로 살만한 물건이 없으니 몇 사람이 티켓을 모아 사용하던가 돈을 더 주고 사용해야 한다. 상술 참 기막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나 4시간 반을 달려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숙소에 도착하니 주위는 캄캄하고, 현지시간으로 밤 11시가 넘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어제 새벽 일어나 다음날 새벽 5시 반이 되도록 24시간을 버티었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동행 인원이 11명이라 한 팀은 3명이 한 방에서 같이 자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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