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영균-꽃비를 맞으며, 권경업-산벚꽃 그늘아래, 나 태주-벚꽃이 훌훌, 김 승동-벚꽃 지는 날에

opal* 2013. 4. 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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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를 맞으며

 

                                                이 영균

 

저 꽃양산 누굴 위해
저리 활짝 펴들고 섰을까
하염없이 꽃잎 뿌리며
봄볕에 말 붙여 오는 벚나무

저 곤한 발자국들
그 까뭇한 속 활짝 펴지도록
다가가서
하얀 꽃양산 곱게 씌워주렴

 

 

 

산벚꽃 그늘 아래(취밭목) 

 

                                                    권 경업


저건 소리 없는 아우성 같지만
실은, 너에게 보이려는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저러기 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저렇게 환히 웃기까지의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낭히 시라도 몇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봐
글쎄,금방 글썽글썽해져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벚꽃이 훌훌

 

                                          나 태주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던지고
연초록빛 새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벚꽃 지는 날에 

                                                 김 승동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 알 수 없는 눈물이
푸른 하늘에 글썽일 때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바람으로 벽을 세우는 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물결은 늘 내 알량한 의지의 바깥으로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서
세상 밖에서 살 때가 있다

그래도 기차표를 사듯 날마다
손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고
계산을 하고 살아가지만
오늘도 저 큰 세상 안에서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는 없다

누구를 향한 그리움마저도 떠나
텅 빈 오늘
짧은 속눈썹에 어리는 물기는
아마 저 벚나무 아래 쏟아지는
눈부시게 하얀 꽃잎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