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시간 오늘
이 기철
아침이 제 손수레에 어제의 헌옷을 담을 때
평화주의자인 나무들의 머리카락 위로 오늘이 온다
희망이라는 말에도 집들은 펄럭이지 않고
푸른 나무들의 잎이 손 흔든다
사랑하라 말 할 때의 둥근 입술처럼
하루의 손이 큰 수레에 오늘을 싣고 온다
그 나무들의 평민국으로 소풍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이 시간엔 지구의 어느 곳에서
평등의 연필이 시를 쓴다
가장 위대한 일은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연필은 쓴다
새봄에는 나뭇잎이 더 신록답다고
저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봄이 마련한 방에서 오늘은 신생아가 태어난다
초록 숨 쉬는 오늘의 아이가
들판은 시집이다
이 기철
천천히 걷는 들길은 읽을 것이 많이 남은 시집이다
발에 밟히는 풀과 꽃들은 모두 시어다
오전의 햇살에 일찍 데워진 돌들
미리 따뜻해진 구름은 잊혀지지 않는 시행이다
잎을 흔드는 버드나무는 읽을수록 새로워지는 구절
뻐꾸기 울음은 무심코 떠오르는 명구다
벌들의 날개 소리는 시의 첫 행이다
씀바귀 잎을 적시는 물소리는 아름다운 끝 줄
넝쿨풀은 쪽을 넘기면서 읽는 행이 긴 구절
나비 날갯짓은 오래가는 여운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혼자 남는 파밭
종달새 날아오르면 아까 읽은 구절이 되살아나는
보리밭은 표지가 푸른 시집이다
갓 봉지 맺는 제비꽃은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동시다
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해본 적 없는 논밭
물소리가 다 읽고 간 들판의 시집을
풀잎과 내가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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