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생진 - 섬 묘지, 고향친구

opal* 2013. 7. 22. 21:36

  

 섬 묘지

 

                                                         이 생진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두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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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친구
 
                                                      이 생진 

 

그 친구
늙어서도 어릴 때 그 마음
커서도 소꿉장난 그때 그 마음
산언덕에 소 몇 마리 기르며
꾀꼬리 소리 들어면 내 생각 난다고
나 커서 시 쓰겠다고 한 적 없고
서울 가 더 많은 시 쓰겠다고 한 적 없지만
우이동 비탈길에서 새소리 들으면
그 친구 생각난다
흙에 심은 흰 밑동 같은 사람
그을은 얼굴에 둙은 마음 살(肉)
도로구획정리에 밀려난 조상의 묘지를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깨끗한 흙 속에 손을 디미는
그 친구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