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寫眞

문경 운달산(1097m)

opal* 2014. 7. 15. 22:00

 
 산행코스는 성주사 입구에서 산행 시작하여  종지(수리)봉, 성주봉(912m)에 이어 운달산(1097m) 거쳐 김용사 입구로 하산.
산행 길이가 길 뿐더러 로프 잡고 슬랩을 오르내리는 곳이 많아 여름산행으론 무리일 것 같아 2진으로 운달산 한 곳만 산행하기로 하고,  
성주사 입구 문경 당포 1리 마을회관 앞에서 1진 내려주고(09:20)  다시 돌아 김용사까지 오는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김룡리에서 하차하니 노거수 우거진 마을은 조용하고,  길 옆으로 계속되는 가믐으로 적은 수량이지만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김용사라는 이정표는 예전에 안동 쪽으로 자주 다닐 때 많이 보았지만 사찰을 찾은 적은 없었다.
김용사로 향하는 비포장 도로는 넓은 만큼 비례하며 전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고목들로 들어차 고찰임을 느끼게 해준다.   
 
김용사 일주문은 다른 사찰과 틀리게 '雲達山 金龍寺 紅霞門'으로 쓰여 있어 특이하다.
붉을紅, 노을霞, 붉은 노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하문과 같은 뜻인가?
 
속세의 번뇌를 끊는 일주문을 들어서니 우측 숲 속에 오래된 비석 2기가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볼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니
강원도 월정사를 방불케 하는 전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끝으로 사찰로 들어가는 보장문이 보인다.
사찰은 하산 후에 둘러보기로 하고 대성암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화장암 입구로 발을 옮겼다.
 
수목은 울창하고 넓은 계곡엔 물이 흐르고 있어 등산로는 서늘하여 걷기에 무덥지 않으나
그늘없는 바위 스랩을 오르내릴 일행들은 얼마나 더울까 싶다.
 
운달산은 첫산행 초행길이라 개념도를 보고 화장암 쪽으로 올라 1진이 하산하는 냉골로 하산할 생각으로 오르는데 
화장암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너덜길로 몇 사람이 가기에 정상 가는길을 물으니 잘 모른단다.
삼거리 옆에 차 세우고 하산한 남자분이 왼쪽 화장암으로 가면 경사가 급하고 위험하니 우측으로 가라 일러준다.
 
할 수 없이 우측 길을 택해 계곡과 너덜길 따라 오르니  경사는 점점 급해지고 개념도를 보아도 어디쯤인지 짐작이 안간다.
바람 한 점 없는 너덜길은 이마에 맨 땀받이 수건이 무색하게 땀이 눈으로 들어가 안경이 거추장스럽다.
서너 사람이 지나기에 개념도를 보여주며 이곳이 냉골이냐 물으니 이 산엔 자주 와도 어디인 줄은 모른다고 한다. 
 
우측 너덜 길로 가다간 정상 방향과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 계곡과 헤어져 어렴풋이 나타난 왼쪽길을 택해 오르니
급경사를 이루는 산죽군락지는 엄청 미끄러원 한 발 올려 딛으면 두 발작 뒤로 물러설 기세다. 
앞에 보인 곳이 능선일까하고 올라보면 그 뒤로 다시 가파르게 올라서야하는 높은 봉우리 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정상은 왼쪽으로 한없이 높아 뵈고 능선을 보니 짧은 시간안에 갈 수는 없게 생겼다.
정오가 지나 1시 가까운 시간이라 6명이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나눈다.
 
식사 후 능선에 오르니 전망대 바위가 있어 정상쪽을 바라보니 까마득해 보인다.
남자 두 사람은 앞에 도망치듯 달아나고 남녀 두 사람은 이곳에서 포기하고 하산한다며 돌아선다. 
점심도 먹었겠다, 하산하는 1진을 아직 못만났으니 희망을 갖고 올라보자며 여인 둘이서 낑낑대며 
내려딛고 오르기를 반복하니 몇 주전 구봉산 산행 때 오르고 올라도 한없이 오르는 것만 같던 생각이 떠오른다.
 
윤달산 정상에서 선두대장을 비롯한 1진 선두그룹 만나고, 후미그룹은 아직 정상 미도착.
선두 그룹은 우리가 올라온 방향으로, 우리는 반대쪽 화장암 방향으로 하산 시작,
능선으로 내려 딛다보니 오전에 얘기해줬던 남자분에게 속은 기분이다.
가파르긴 했지만 위험한 곳은 별로 없고, 우리가 오른 곳 보다 덜 가파르다.
 
속도 내지 않고 여유있게 내려 딛어 화장암 삼거리로 내려오니 속도 빠른 선두 그룹과 다시 만났다.
 
내려오는 길에 김용사로 가 보장문 들어서서 우측으로 회색빛 해우소를 보니 선암사의 해우소가 생각나고,
왼쪽 축대 위엔 범종각이, 계단 위로 사천왕문이 서있다.
사천왕들은 다른 사찰과 다르게 석상으로 조성되어 옅은 회색으로 눈알과 좁은 입술만  빨갛다.
 
사천왕문을 드어서면 보통 사찰은 루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서는게 보통인데 이곳 보제루 아래에는
한 아름이 넘는 굵은 기둥만 보제루룰  받쳐주고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보제루 옆으로 있다.
대웅전 앞에 탑은 안보이고, 보제루 쪽으로 석주 두 2기가 서 있는데 처음보는 것이라 용도를 모르겠다. 
 
돌 기둥 두 개의 높이나 모양은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보면 하나는 사각, 또 하나는 6각 기둥으로
사각 기둥엔 둥근 꽃 문양, 꼭대기 긴 연꽃 봉오리, 맨아래엔 아字 문양이, 그리고 한 면엔 날자가 새겨져 있는데 
일부러 지운 두 글자 아래엔 15년 10월이라고 새겨졌는데 일본 년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6각 기둥은 질감이 거칠어 뵈고, 사각 기둥엔 글자가 새겨져 있다.
 
 
如如 橋 여여교

길 우측으로
  
안양루 ---보제루.
 
 
 

일주문의 이름은 홍하문(紅霞門)이다. 운달산 김용사란 편액과 함께 동농 김가진(金嘉鎭.1846∼1922)선생의

글씨다.


              일주문의 주련

 

       - ‘세속의 번뇌 마음 비우라’ -

入此門來莫存知解      입차문래막존지해
無解空器大道成滿      무해공기대도성만

이 문을 들어오거든 알음알이를 피우지 말라.
알음알이 없는 빈 그릇이 큰 도를 이루리라.


김용사(金龍寺)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10년(서기 588년)에
운달(雲達)조사가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는 완전히 불타는 비운을 맞았으나
인조 2년(1649)에 혜총선사가 중건했다.
48동의 건물과 14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할만큼 규모가 컸던
김용사는 지금도 규모면에서나 역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찰이다.
일주문의 주련은 이 사찰이 선·교에 치우치지 않은 수행도량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우선 사찰을 들어설 때는 세속에서의 지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찰은 무엇을 채우러 오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러 오는 곳이란 뜻이다.
사찰이 수행도량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비워냄’의 공부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우지 못하여 넘쳐나는 것은 번뇌요 망상일 뿐이다.

그래서 일주문의 의미는 각별하다.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선이 바로 일주문이다.
번뇌의 세계와 그 번뇌를 씻어 맑고맑은 자성(自性)을 찾는
세계 사이에 선 문이 바로 일주문이다.

번뇌와 해탈의 가운데점에 서 있는 일주문에 ‘속세의 알음알이'를 버리고 들어오라’
엄중한 경고가 있음으로 사찰은 엄연한 도량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마음 속의 세속 먼지를 털고 들어오면
알음알이가 없는 텅빈 그릇과 같은 마음에 커다란 도(道)가 충만하리라는 것.
이 얼마나 희망찬 경고인가. (권영한 先生의 解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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