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복효근 -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헌 신, 목련 후기, 낙엽

opal* 2014. 11. 6. 08:56

 

▲ 용담,

개화시기: 9,10월.  꽃말 : 애수, '당신이 슬플때 나는 사랑한다'

쌍떡잎식물로 보라빛 꽃이 많이 달리면 옆으로 처지는 경향이 있어 바람에 쉽게 쓰러진다.

그러나 쓰러진 잎과 잎 사이에서 꽃이 많이 핀다

 

당신이 슬플때 나는 사랑한다

 

                                                              복 효근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나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때 나는 사랑한다.

                                                               < 1993년 첫 시집>

 

 

헌 신

 

                                                       복 효근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 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 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냄새 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목련 후기

 

                                                                           복 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낙엽

 

                                          복 효근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찬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