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겨울사랑, 겨울나무

opal* 2022. 1. 11. 21:45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 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되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겨울 사랑  

                             고정희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닌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겨울나무 ​

                        이해인 ​

내 목숨을 이어 가는 
참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눈 감아도 트여오는 
백설의 겨울 산길 
깊숙이 묻어둔 
사랑의 불씨 

​감사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넘치는  은혜의 바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가는 세월 
오는 세월 
기도하며 지새운 밤 

​종소리 안으로 
밝아오는 새벽이면 
영원을 보는 마음 

​해를 기다립니다 
내 목숨 이어가는 
너무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겨울 나무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 되어 어지럽다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 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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