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나무를 보며
임영석
올해는 저 소나무가
뾰족한 잎을 펴서
빗방울 하나라도
제 손으로 받아내며
공(空)으로 듣는 새소리
갚을 일이 있을까
아니면 더 푸르게
새의 눈을 찌르고서
뾰족한 잎만 봐도
저절로 울어대는
새들의 노래 소리를
공(空)으로 또 들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저 푸른 생각 끝에
송홧가루 가득 품어
임 오는 윤사월에
백년을 기다려 사는
그리움을 말하려나
(임영석·시인, 1961-)
송림(松林)에 눈이 오니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임 계신 데 보내고저
임께서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ㅡ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
'송강가사(松江歌辭)' 중에서...
소나무에 대한 예배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지표(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건목(建木) ;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황지우·시인, 1952-)
소나무 숲에는
이상국
소나무 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고
소나무 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저렇게 먼데만 바라보겠는가
(이상국·시인,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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